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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LOUNGE] 동부그룹 위기 벗어난 김준기 회장 | 하이텍·전자 실적 호전…제조부문 부활
 
2017.03.20 10:49
불과 2년여 전인 2015년 초까지만 해도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73)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의 갈등 속에 제조업 구조조정이 난항을 보이면서 그룹이 존폐 기로에 섰기 때문. 심지어 그룹 모태기업인 동부건설마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맞으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김 회장은 조금씩 미소를 되찾아가는 모습이다. 지긋지긋한 적자에 시달리던 반도체 업체 동부하이텍이 턴어라운드했고, 가전업체 동부대우전자도 해외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다. 비록 동부건설, 제철, 팜한농 등은 그룹 울타리에서 벗어났지만 금융부문과 함께 남은 제조 계열사 실적이 날개를 달면서 그룹 위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동부 제조업 부활 선봉장에 선 계열사는 반도체 회사 동부하이텍이다. 동부하이텍은 국내 유일의 아날로그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전문업체. 아날로그 반도체는 빛과 소리, 압력 등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전환하거나 컴퓨터의 연산 결과를 사람이 인식하도록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동부하이텍은 수년간 지긋지긋한 적자에 시달렸지만 최근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724억원으로 전년 대비 38% 늘었다. 2014년 456억원 영업이익으로 창사 이래 첫 흑자를 낸 데 이어 지난해엔 사상 최대 이익까지 경신했다. 영업이익률만 22%에 달한다.
동부하이텍 실적이 살아난 건 스마트폰, TV에 들어가는 전력 반도체와 센서 등 주요 품목 수주가 늘어난 덕분이다. 중소 반도체 설계업체(팹리스)들을 대상으로 한 다품종 소량생산 중심의 아날로그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모델이 뿌리를 내린 결과다.
▶금융부문 실적도 탄탄
화재·반도체 주축 역할
김남호 상무 승계 관심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중 메모리 반도체는 낸드플래시, D램 정도인데 아날로그 반도체는 전력관리칩, 오디오칩, 디스플레이칩, 각종 센서 등 종류가 다양하다. 동부하이텍은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신규 응용 분야 수요를 맞추기 위해 2015년 말 월 10만장이던 실리콘웨이퍼 처리량을 지난해 말 12만장 규모로 증설했다. 최창식 동부하이텍 사장은 “지난해 공장 증설을 완료했고 올해 공장 가동률이 90%를 넘을 정도”라고 자랑했다. 국내뿐 아니라 중국 스마트폰 업체 납품 물량이 늘어난 것도 주효했다. 전체 매출에서 중국 비중이 17.4%나 된다.
때마침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도 호황을 이어가는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올해 11%가량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9%로 반도체 시장 전체 성장률보다 두 배 이상 높을 거란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부하이텍 부활을 점치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김준기 회장은 1983년 미국 몬산토와 합작해 국내 최초로 실리콘웨이퍼를 생산하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7년 동부하이텍 전신인 동부전자를 설립했다. 하지만 곧장 IMF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았다. 2001년 국내에서 불모지였던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으로 방향을 틀면서 재기를 노렸지만 또다시 쓴맛을 봐야 했다. 막대한 자금, 기술력이 필요한 데다 대만, 싱가포르 등 글로벌 업체와의 경쟁이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대규모 차입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진 데다 IT 시장 거품이 서서히 꺼지면서 경영난을 피하지 못했다. 빌린 돈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2001~2013년 누적 영업손실만 3조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김준기 회장은 끝내 동부하이텍을 포기하지 않았다. 경영난 극복을 위해 1조원 넘는 자산 매각을 추진했고 김 회장 스스로도 3000억원 사재를 출연하는 등 집념을 보였다. 김 회장은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 진출할 당시 “나는 망해도 좋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다. 개척자로서의 역할에 충분히 보람을 느낀다”고 밝힌 만큼 동부하이텍을 계속 끌고 갔다. 다행히 실적이 좋아졌고 채권단 중심의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등장했던 ‘동부하이텍 매각’ 얘기도 쏙 들어갔다.
동부하이텍과 함께 가전업체 동부대우전자 분위기도 괜찮다.
2013년 동부그룹에 편입된 동부대우전자는 매년 영업흑자를 내는 중이다. 해외 시장에서 중저가 가전제품 판매량이 늘면서 2015년 매출 1조5733억원, 영업이익 109억원을 기록했다. 동부대우전자는 전 세계 40여개국에 6개 생산법인, 30여개 판매법인을 확보했다. 멕시코와 칠레에선 냉장고, 베네수엘라에선 전자레인지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는 등 중남미 시장 공략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김준기 회장도 지난해 동부대우전자 유상증자에 사재를 출연하며 재도약에 힘을 보탰다.
재계 관계자는 “동부그룹은 지난해 4월 동부팜한농을 LG화학에 매각한 걸 끝으로 구조조정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당분간 동부하이텍, 대우전자 등 반도체, 전자업체를 중심으로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데 힘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룹 해체 위기를 힘겹게 견뎌온 김준기 회장은 이제야 한시름 놓게 됐다. 2015년 초 신년사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땀 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다”고 작심한 듯 토로했지만 어느새 분위기가 살아났다.
김 회장은 재계에서 보기 드문 1세대 창업 경영인이다.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이던 1969년 동부건설 전신인 미륭건설을 창업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자본금 2500만원, 직원 2명에 불과한 소기업. 그럼에도 무서운 속도로 사업을 키워나갔다. 1970년대 초반 일찌감치 중동 건설 시장에 진출하는 등 해외 사업으로 성장세를 이어갔다. 건설업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으로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해 외형을 키웠다. 금융뿐 아니라 철강, 반도체, 농업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서면서 6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을 일궈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지 40여년 만에 일생일대 위기를 맞았다. 경영난에 핵심 계열사들이 줄줄이 팔려나가고 자칫 그룹마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그럼에도 절치부심해 제조업에 대한 희망의 끈을 이어왔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김준기 회장이 제조업 회복 불씨를 살린 만큼 동부화재, 하이텍 중심으로 과거 위상을 되찾는 데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부그룹이 보란 듯이 재기할 경우 잠잠했던 경영권 승계가 수면 위로 떠오를지도 관심거리다. 김준기 회장 장남 김남호 상무는 2009년 동부제철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동부팜한농을 거쳐 2015년 4월 동부금융연구소 경영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부금융연구소는 동부그룹 금융부문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곳. 올 초엔 상무로 승진하면서 경영권 승계가 한층 빨라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동부그룹 핵심 계열사인 동부화재 지분구조를 보면 김남호 상무(9.01%), 김준기 회장(5.94%) 등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자 지분이 33.25%에 달한다. 동부화재는 동부생명, 동부증권 등 주요 금융 계열사 최대 주주다. 제조부문 지분구조도 비슷하다. 김남호 상무가 ㈜동부 지분 18.59%를 보유하고, ㈜동부는 동부하이텍 지분 12.43%를 소유하면서 동부하이텍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재계 관계자는 “김남호 상무가 금융, 제조부문 모두 핵심 계열사 지분을 지배하는 상황이라 사실상 동부그룹 승계구도가 굳혀졌다고 보면 된다. 다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동부하이텍 등 제조업 분위기가 좋아졌지만 김 상무가 이제 막 임원을 달았고 겨우 구조조정을 끝낸 상황이라 승계엔 적잖은 시간이 걸릴 듯싶다”고 귀띔했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 일러스트 : 강유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00호 (2017.03.22~03.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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