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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잔인한 한국의 엘리트
 
2017.03.20 17:14
한국의 엘리트들은 잔인하다. 엘리트란 우수한 능력을 인정받아 사회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인, 관료, 교수, 기업가, 한국에선 대기업 노조도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엘리트의 책무는 중요한 자리를 맡아 무리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다. 국민의 살림살이를 도와주고 약자(弱者)를 보호하는 것이 당연히 책무에 포함된다.
그런데 한국의 엘리트층은 이러한 책무를 소홀히 한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민생을 내팽개친다는 것이다. 엘리트 계층 내의 명분 싸움이나 정치적 진영논리 탓인 경우가 많다. 거룩한 말만 있을 뿐 행동이 없다. 그저 입만 살아있는 셈이다.
지금 한국의 최대 현안은 일자리다. 실업자 수가 무려 135만명이다. 청년실업이 가장 심각한데, 사회통념상 '백수'인 비율이 청년 3명 가운데 1명 꼴이다. 이미 임계점에 이르렀거나 바짝 근접한 상태다. 사정이 이렇지만 정치권을 비롯한 한국의 엘리트들은 하는 일이 없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서는 '양질의 일자리'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개혁을 중심으로 여러 대책이 필요하다. 고액연봉 정규직을 대변하는 귀족노조는 그 핵심인 '노동개혁'의 '노'자만 나와도 부르르 치를 떤다. 정치권 엘리트들은 이런 노조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쁘다. 요즘 대선 후보마다 '일자리 창출'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노조를 의식해 핵심을 피해가다 보니 대부분 SF소설처럼 비현실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다.
의료계, 법조계 등 고급 서비스업종에서의 진입장벽과 비상식적 관행도 여전하다. 한국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있다. 그러나 해당 분야의 문호를 넓혀 경쟁을 촉진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지당한 의견엔 귀를 닫는다.
김영란법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부패척결'을 명분으로 출발했지만 졸속입법 과정을 거치면서 큰 부작용(일자리 감소와 서비스업 침체)이 예상돼왔다. 그것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 법이 본격 시행된 지난해 10월 이후, 음식·숙박업종에서만 3만명의 일자리가 증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는 점이 가슴을 친다. 숫자만 많았지 정치적 목소리는 작았기 때문이었을까. 무려 3만명의 '밥줄'을 끊어놓고도 이 땅의 엘리트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참고로 밑 빠진 독처럼 수조 원의 국민혈세를 까먹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임직원 수가 1만2000명이다. 목소리가 큰 이 회사의 구조조정에 대해선 연일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그러나 김영란법으로 그 두 배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졌어도 한국의 엘리트층은 미안한 기색조차 없다. 이런 잔인한 위선은 옆에서 지켜보는 것조차 고역이다.
엘리티즘의 병폐는 이 밖에도 많다.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단순기능 인력은 약 54만명이다. 하지만 불법취업자를 감안하면 70만명에 달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새벽 인력시장은 이들 차지가 된 지 오래다. 국내 비숙련 고용시장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고용주 입장에서 값싼 노동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제는 한번 의심해볼 때가 됐다. 혹시 너무 와버린 것은 아닐까. 길게 보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고용시장의 정상적 수요-공급 체계를 무너뜨리고, 자국인 비숙련 근로자들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고용주의 이익을 위해 국민이 정치·경제·사회적 비용을 대는 구조다.
물론 한국의 모든 엘리트가 썩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은 분명하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엘리트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결정장애'에 빠진 오늘날 한국이 그 방증이다.
5월 9일 대선이 이런 풍조를 깨는 전환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고무줄식 수사·감사, 정치권의 줄세우기 관행부터 손질해야 한다. 엘리트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해줘야 '족쇄'가 풀린다. 엘리트가 엘리트다워야 나라에 희망이 있다.
[이진우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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