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관계로만 해결할 수 없는 직장 내 괴롭힘

"넌 도대체 어떻게 된 XX야. 이따위로 일을 해 놓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일 좀 똑바로 하라고 이 XX야!" A사의 김 주임은 상급자인 팀장이 수시로 반말과 비속어를 쓰면서 고함을 지르는 등 언어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인사팀에 적절한 조치를 요청했다. A사 인사담당자는 해당 상급자를 조사했다. 그러나 상급자인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문제를 제기한 김 주임은 근무태도가 좋지 않을뿐더러 업무 실수도 잦아 몇 차례 언성을 높여 이야기한 적은 있다. 하지만 욕설을 하지는 않았으며 언성이 좀 높았다 싶은 날은 사과도 하고 달래기도 할 겸 둘이서 따로 술 한잔을 하기도 했다. 이런 것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한다면 팀장이 어떻게 팀을 꾸릴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경우 부서장이 팀장과 김주임을 불러 함께 식사라도 하면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예전의 우리 모습이었다. 그러나 소위 직장 내 갑질이 전 사회적 이슈가 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관련 법률의 개정까지 완료됐다. 이제 기업은 소속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 고충을 제기할 경우 적법한 처리 절차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인사부서의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실제로 수시로 욕설을 한 것인지 아니면 업무수행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조금 심한 질책 정도인지, 만약 언성이 좀 높아진 정도였다면 징계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 두 사람을 한 팀에 그대로 둬도 되는지. 조사를 진행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법적인 의무가 생겼다.

2. 직장 내 괴롭힘 고충의 처리절차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사업주 조치의무를 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의 내용은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4조의 성희롱 발생 시 조치사항과 유사하다. △ 누구든지 신고가 가능하고 △사용자는 조사 기간에도 근무장소 변경이나 유급휴가 부여 등 피해자 보호조치를 해야 하며 △괴롭힘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될 경우 피해자의 의견을 청취한 후 행위자에 대한 징계 및 인사조치를 해야 하며 △피해자가 요청할 경우 전환배치, 유급휴가, 배치전환 등의 배려조치를 해야 하며, △ 피해자 및 신고자에 대해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괴롭힘 행위를 했다고 의심되는 행위자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 제23조의 정당성 범위 내에서 징계나 인사처분을 결정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조사를 진행하고 인사처분을 결정하는 전 과정에서 관련자, 즉 피해자 및 신고자의 보호조치 의무까지 부과된다.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의무사항을 준수하기 위한 직장 내 괴롭힘 고충처리 과정을 도식화 해보면 아래와 같다.



도식화한 고충처리 절차는 하나의 예시이며, 각 절차는 사안의 경중이나 기업 사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다. 유의할 점은 재발방지 교육 등의 실시 외에는 근로기준법 및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절차이므로 빠뜨려서는 안 된다.

3. 절차 진행 시 유의사항

조사 절차 진행 시 유의사항

직장 내 성희롱과 마찬가지로 직장 내 괴롭힘 역시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폭언, 욕설, 인격 비하 발언, 따돌림 등의 피해는 피해자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일어나거나 은밀하게 발생하기 쉬우므로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기 어렵다. 하지만 행위자에 대해 징계나 불이익한 인사조치를 해야 하는 사용자 입장에서 본다면, 객관적인 증빙 없이 징계 등을 실행하는 것은 정당성이 부인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녹취나 이메일, 문자 등 객관적인 물증이 없을 경우 회사는 정황적으로 괴롭힘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므로, 피해자와 행위자뿐 아니라 주변 다른 직원들에 대한 조사도 면밀하게 실시해야 한다.

이때 유의할 점은 첫째, 조사자는 피해자 및 행위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선정해 조사과정의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 징계 및 인사처분의 수용도를 높이는 것은 조사과정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된다. 둘째, 비밀보호 원칙을 준수해 2차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 권위적인 조직문화일수록 피해자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공식화했다는 이유만으로 조직 내 갈등 유발자로 낙인찍힐 위험이 매우 크다. 조사과정에서 잘못된 소문과 억측으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피해자, 행위자, 신고인, 조사대상 부서원 모두에게 비밀준수 의무를 부과하고 비밀 누설에 대한 징계책임을 질 수 있음을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은 취업규칙의 필수적 기재사항이다. 각 사의 상황에 맞게 구체적으로 금지되는 행위를 취업규칙이나 행동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예방하는 효과 외에도, 괴롭힘 행위의 존부 판단 시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 의견 청취를 통한 징계 및 인사처분 시 유의사항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피해자 중 대부분은 행위자와 더 이상 함께 근무하지 않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피해자가 원하는 수준의 징계나 인사처분을 회사가 그대로 수용하기 곤란한 경우도 있다. 괴롭힘 행위가 해고에 이를 정도라고 보기 어려움에도 행위자를 무조건 해고하기를 고집하거나, 불가능한 인사처분(예를 들어 회사 사정 또는 행위자의 직무 특성상 부서 전환배치가 불가능한 경우)을 요구한다면 회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피해자의 의견을 듣는 것은 법적 의무지만 피해자의 의견에 따라야 할 의무까지 부과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적 의무가 아니라고 해서 피해자의 요구에 못 미치는 징계처분을 결정하고 피해자에게 결과만 통보하는 것은 피해자 의견청취 절차를 거치도록 한 법 규정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고 평가될 수 있다. 게다가 회사가 괴롭힘 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불만으로 조직갈등이 심화될 여지도 있다. 회사는 피해자의 의견을 존중해서 최종 인사처분을 결정하되, 징계재량권이나 경영사정의 한계로 인해 피해자의 요구대로 처분하기 어렵다면 이를 피해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함께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4. 그가 잘못한 것이 있다고 하여 나에게 욕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 가는 것이 즐거우면 출근할 때 입장료를 내야 한다. 근로계약에 따라 근로를 제공해야 하는 직장이 편안한 공간이 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공유하는 농담이다. 하지만 직장에 가는 것이 즐겁지는 않더라도 괴로운 일이 돼서는 안 된다. 상급자의 강압적인 업무방식으로 장기간 시달리던 근로자의 아침에 기상 알람이 울리면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버티나 암담한 심정으로 일어난다던 말이 떠오른다. 그 상급자는 다소 큰소리로 지적하기는 했으나 해당 직원의 업무 실수가 없었더라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직장 내 상하급 관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시점이다. 직무권한의 상하관계는 있어야 하지만, 인권에서 상하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가 실수하고 잘못했다고 해서 나에게 그를 폭행하거나 욕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관련 법률 개정을 기화로 기업 내 인권과 평등의 가치를 노사가 함께 고민하고 실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