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규범에 맞춰 행동하고 원활한 업무에 도움주는 자아조절 에너지(self-regulation),

- 상사, 동료, 고객들과 술 자주 마실수록 예의 잃지 않기 위해 자아조절 에너지 소모 증가

- 술이 주는 이완기능, 오히려 술자리서 풀어지기 쉬운 자기 통제 위한 자아조절 에너지 소모 높여

- 다음날 아침 에너지 고갈, 충분한 휴식 주지 않으면 사소한 일에도 갈등, 업무 효과성을 저하


술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기호식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직장인에게 음주는 중요한 사회활동의 수단이기도 하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나라 직장의 회식과 접대에서 술을 빼놓기는 어렵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축하하기 위해서, 나쁜 일이 있으면 서로 위로해주려고, 또는 그냥 밥만 먹기는 어색하니까 우리는 술을 마신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직장생활에 빠질 수 없는 술에 대한 최근 조직심리학 연구 결과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우리는 지나친 음주가 건강을 해치고 이는 지각, 결근, 병가 등으로 업무 효과성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또한 술은 단기적으로 인지와 관련된 운동능력(예: 눈과 손발의 협응, 세밀한 조작, 빠른 반응 등을 하는 능력)을 손상시키며, 따라서 작업자의 음주는 작업장 안전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음주의 부정적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직장동료나 상사 그리고 고객들과의 술자리가 직장생활이나 비즈니스에 순기능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연구는 조직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결과변인인 직무열의(열정을 가지고 완전히 몰두해서 일하는 상태)와 직장 사람들과의 갈등에 직장인의 음주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다. 직장인의 음주가 직무열의와 직장 사람들과의 갈등에 미치는 효과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조절(self-regulation)이라는 심리적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자기조절이란 본능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목표나 사회적 규범에 맞춰 행동을 조절하는 과정을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기 혹은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조절은 필수적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마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기조절 능력이 다르며, 자기조절 능력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대인관계도 좋고, 결정적으로 더 행복하다. 직장 또한 끊임없는 자기조절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쉬고 싶어도 계속 일해야 하고, 짜증이 나도 밖으로 표현하기 어렵고, 웃고 싶지 않아도 미소를 지어야 하는 순간순간 우리는 자기조절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기조절에 필요한 에너지 혹은 자기조절 자원의 양이 한정적이라는데 있다. 즉, 자기조절 자원을 보충하지 못한 채 계속 사용하거나 혹은 단기적으로라도 높은 수준의 자기조절 행동을 하게 되면 자아 고갈 상태가 와서 효과적인 자기조절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자기조절 에너지의 방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다시 자기조절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회복기회가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열정을 가지고 일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충분한 에너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아 고갈이 될수록 직무열의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자기조절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에서는 보통은 가볍게 참고 넘어갈 동료나 상사의 말에도 화를 참지 못해서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 따라서 직장인의 음주가 직무열의와 직장 내 대인갈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과연 일 관련 음주가 자기조절 자원을 회복할 기회를 제공하는지 아니면 반대로 자기조절 자원을 소비하는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술은 생리적으로 이완 기능을 가진다. 술을 마시면 몸과 마음이 다소 느슨해지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또한 술을 마시면 뇌기능 중 행동을 계획하고, 계획을 실천하며, 이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억제하는 집행기능(executive function)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문화적으로도 술자리에서는 사회적 규범을 어느 정도 풀어주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술의 효과 때문에 술은 여가활동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 직장인 중에는 술이 유일한 여가활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술은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회복 경험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자기조절 자원을 재생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보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술의 이완 기능은 오히려 자기조절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규범상 일과 관련된 사람들과는 업무장면 밖에서도 업무에서의 관계 규칙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나 선배는 밥을 먹고 술자리에서도 여전히 상사이고 선배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접대의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고객과의 술자리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엄연한 직무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술을 마셔서 집행기능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적절한 선에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려면, 술을 많이 마실수록 더 많은 자기조절 자원을 소비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이 연구의 참여자는 기술 컨설팅 및 교육을 주로 하는 기업에 근무하는 367명의 직장인이었다. 연구참여자들은 연구 초기에 인구통계학적인 특성(성별, 연령, 직종, 직급 등)과 기본적인 자기조절능력을 측정하는 설문에 응답하였다. 그리고 약 2주 후에 2주 동안 매일 아침과 저녁, 하루 2회씩 온라인 설문에 응답하였다. 아침 설문에서는 전날 누구와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그리고 오늘 아침 자아조절 에너지의 상태를 보고하였고, 저녁 설문에서는 그날 업무시간에 느낀 직무열의와 대인갈등 경험 정도를 보고하였다. 이러한 다소 번거로운 설문방식은 한 개인 내에서 전날 음주량에 따라 직무열의와 대인갈등의 정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를 질문함으로써 직장 상사, 동료, 고객 등과 같이 일 관련 음주와 친구, 지인 등과의 사적 음주를 구별하였다.

연구결과, 일 관련 음주, 즉, 직장 동료, 상사, 혹은 고객 등과 술을 마시는 양이 많을수록, 다음 날 아침 자아조절 에너지가 고갈되는 경험을 더 많이 하고, 아침에 자아 고갈이 될수록 그날의 직무열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일 관련 음주로 인한 자아 고갈이 대인갈등에 미치는 영향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자기조절능력이 기본적으로 높은 사람들은 아침에 자아 고갈 수준이 그날의 대인갈등의 경험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반면, 원래 자기조절 능력이 낮은 사람들은 아침 자아고갈이 많이 될수록 대인갈등을 많이 경험하였다. 마지막으로 사적으로 술을 마셨을 때도 많이 마실수록 다음 날 아침에 자아고 갈이 더 많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경우에는 대인갈등을 높였지만 직무열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직장과 관련된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은 휴식 기능보다는 자기조절 자원을 소비하는 효과를 가지고, 결국 이는 다음 날 직장에서의 업무 효과성을 저하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적인 음주도 다음 날 자아 고갈을 유발하지만, 직무열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이 연구결과만으로 직장 동료 및 고객과 술을 마시는 것이 아무런 긍정적 효과를 가지지 않는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음주는 사회적 유대감 형성에 기여하며, 우리 사회에서 밀접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비즈니스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장기적인 맥락에서 또는 다른 측면에서 직장 관련 음주가 직무 효과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 관련 음주가 다음 날 직무열의를 떨어뜨리고 직장에서의 대인갈등을 증가시킨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과연 일 관련 음주의 어떤 긍정적 효과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음주의 부정적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을까 의문이다.

더 나아가 조직의 관리자들은 종업원의 직무열의와 대인갈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도 조직구성원 간 그리고 고객과의 유대감을 공고히 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고용 불안의 심화, 이와 맞물린 노동 강도의 증대 등으로 인해 일과 개인의 삶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우리 사회에서 조직은 조직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근무시간 후 진정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