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에서의 특성 점수(idiosyncrasy credits)

직장 내에서 특성 점수(Idiosyncrasy credits)라는 흥미로운 개념이 있다. 특성 점수 개념은 심리학자 에드윈 홀랜더(Edwin Hollander)가 직장 내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조사하다가 발견했다.

홀랜더에 의하면 직장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대개 상급자다. 상급자의 의견은 잘 받아들여진다. 상급자가 제 목소리를 냄으로써 감당하는 위험은 적다. 그러나 하급자는 다르다. 좋은 의견을 내면 적이 생기고 나쁜 의견을 내면 비난받는다. 제 목소리를 낸 그 자체만으로도 평판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떤 하급자들은 달랐다. 제 목소리를 내어 의견을 관철시키고 동시에 자신의 평판도 지켰다. 홀랜더는 "이들이 평소에 특성 점수를 쌓아놓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롤플레잉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특성 점수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과정에서 쌓은 친밀도, 우호도, 호감, 명성 등이 능력에 가산치로 적용되는 것처럼 특성 점수가 하급자의 의견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높은 특성 점수 = 직장 생활 만렙

홀랜더와 후속 연구자들은 조직에서 유독 특성 점수가 높은 하급자(이하 특성 만렙 , 만렙은 게임에서 최대 레벨을 의미한다)들을 찾아 공통점을 분석했다. 이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특성 만렙들은 진짜 중요한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
특성 점수는, 쌓기는 어렵고 잃는 건 순간이다. 그래서 신중하게 관리해야 한다. 특정 사건을 앞에 둔 특성 만렙은 이것이 정말 중요한 일인가? 중요하다면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일인가? 개입했을 때 득보다 실이 더 크지는 않은가? 등을 면밀히 판단한다.

둘째, 의견을 낼 때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익숙한 표현을 사용한다.
조조의 매실 우화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허난성 서쪽 푸뉴(伏牛)산맥을 넘던 위나라 병사들이 체력 고갈과 갈증으로 힘을 내지 못할 때 조조는 "이 산만 넘으면 매실이 주렁주렁 달린 매화나무밭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매실의 신맛을 떠올린 이들의 입에는 침이 고였다. 잠시 갈증을 잊은 병사들은 힘을 내어 목적지에 일찍 도달할 수 있었다. 조조가 명예, 보상, 처벌을 말했다면 위기를 넘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셋째, 솔선수범으로 설득한다.
특성 만렙은 설득이 필요한 순간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솔선수범한다. 어려운 일, 험한 일 가리지 않고 조직과 구성원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되면 몸소 나서 실천해왔기 때문에, 하급자이지만 조직과 구성원에게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넷째, 특성 만렙은 이성에 호소하고 감정을 움직인다.
사람들은 설득의 핵심이 감정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특성 만렙은 이런 쪽에 매우 능통한데 예를 들면,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이성을 움직이려는 실수 같은 건 범하지 않는다. 공적인 일을 앞에 두고 감정에 호소하면 상대는 당장 뭔가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설사 호소로 인해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뿐이다. 감정에 의해 이성이 움직였다는 인상을 주기 싫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성 만렙은 이성에 호소해 감정을 움직이려 한다. 이것은 매우 높은 수준의 설득 기술이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잘 통하는 수단은 숫자, 통계, 그래프다. 이를테면 "건물 청소 노동자들에게 2시간 청소, 1시간 휴식을 주면 작업 효율이 올라갑니다. 결과적으로 건물 청결도가 올라가면 업무 환경이 쾌적해질 것이고 이는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만렙이 아니다. 끝에 슬쩍 이런 말을 끼워 넣는 것이다. "휴식 시간에 청소 노동자들은 무엇을 할까요. 가족사진을 보거나 자녀의 메시지에 답장하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겠죠. 단순히 휴식 시간을 부여하자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결정은 청소 노동자들의 가족 유대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특성 만렙은 항상 돌다리를 두들긴다

특성 만렙의 또 다른 특성은 지속성이다. 특성 만렙은 조심조심 돌다리를 두들기며 천천히 가는 사람이다. 페이스를 조절하며 큰 그림을 보고 가는 마라토너 같은 스타일이다. 튀지 않으려 노력하고 만약 필요에 의해 제 목소리를 낸 다음에는 뒤로 빠져 조용히 숨을 고르고 사태를 관망한다.

또한 특성 만렙은 상황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거기에 맞게 행동한다. 모아 놓은 특성 점수를 한 방에 써버리는 만용을 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정 수준의 특성 점수를 유지한다. 이를테면 의견을 낼 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리곤 하는데, 만약 조직이나 상급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 같으면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고 주변과 성과를 나눈다.

우리는 모두 특성 만렙이 되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될까?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먼저 시작해보라고 한다.

첫째, 평소부터 꾸준히 주변 사람을 돕고 솔선수범하라.
당장 여러분의 일터를 돌아보라. 남을 돕는 사람, 지저분한 공용 공간을 청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성 점수를 쌓는 것은 의외로 간단한데, 이 간단한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괜찮다. 공용 프린터나 복사기에 새 용지 채워 넣기, 사무실 구석의 먼지 쓸기, 복도에 있는 식물에 물주기 등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실천 점수 쌓기다.

둘째, 요가나 명상을 통해 느리고 신중하게 반응하는 습관을 익히라.
직장 생활을 통해 우리는 즉각 반응을 체화한다. 전화벨이 울리면 두 번 울리기 전에 기계적으로 받아야 하고, 상급자가 지시하면 일단 예,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부터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는 특성 만렙이 될 수 없다. 요가와 명상은 자극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내 몸과 생각을 스스로 조절하는 연습이다. 꼭 특성 만렙이라는 목적이 아니라도 바쁘게 사는 현대 직장인에게 여러모로 득이 된다.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