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우리나라를 덮친 지, 4개월여가 지났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거리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이맘때면 사람들로 붐볐을 거리 또한 한산하다. 벚꽃 구경을 차 안에서 한다든가, 교회에서는 운동장을 빌려 자동차극장처럼 예배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집에서 업무를 보는 재택근무가 크게 늘었다. 예전 같았다면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한순간에 변해버린 일상은 변화에 대한 적응뿐 아니라 또 다른 문제들로 번지고 있다. 무방비 상태에서 바이러스의 무차별 폭격을 받은 듯 우리의 삶의 반경은 위축됐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갈등의 폭도 커지고 있다.

물론 없던 갈등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예전부터 관계가 좋았던 가족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위기 상황에 잘 대처하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갈등 관계에 있었던 가족은 의도치 않게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게 되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코로나19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벌이고 있는 서구사회에서는 강력범죄는 줄고, 오히려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갈등이 촉발되면서 더 이상 같이 있는 것조차 힘든 사람들이 늘어난 탓에, 인터넷에 이혼을 검색하는 횟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되었지만, 함께 저녁을 보내는 것이 무서운 상황인 것이다.

사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사랑으로 평생을 함께하고자 결혼했지만, 살면서 만나는 여러 문제와 차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기쁠 때나 슬플 때도 함께 하자고 맹세했으나, 파뿌리는커녕 새치가 하나둘 생길 때쯤이면, 내가 이런 사람이랑 왜 결혼했을까 하는 후회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는 것이 바쁘고 고단한 탓에, 작은 갈등은 한쪽에 접어두고 별일 없는 것처럼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찌 보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신뢰를 회복하며, 화해할 기회일 수 있다.

사랑 확인도 좋고, 신뢰 회복도 좋고, 화해도 좋다. 그런데 말이 쉽지 실제로 행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쉬운 일이라면 몇 년째 갈등 속에 있는 사람이나, 못 살겠다고 헤어지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리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가 갈등을 대하는 방법은 대개 갈등 관계에 있는 대상과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 방법은 대부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거리두기라는 일종의 휴전협정을 통해서, 내가 상대를 도발하지 않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재택근무로 인해 가족 간 물리적 거리두기가 어려워진 탓에, 당장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긴장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어도 가시방석처럼 마음이 편치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 입장에 서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상대방이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거친 말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으로 포장돼 있지만, 결국 상대방도 나만큼이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를 느끼고 있다고 말이다. 우리가 가진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달리 해석된다. 예를 들어,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 또한 등한시하는 남편을 보고, 욕설을 퍼붓고 정신 차리라는 독설을 내뱉는 아내의 말속에, 제발 건강을 생각해서 술도 줄이고, 아이들을 위해서 일찍 귀가해 놀아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녹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죽 힘들면 저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할까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또한 그 말을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나와 잘 지내고 싶다는 표현이 아니겠는가. 갈등과 상처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또 다른 방법은 심리적 정전협정이다. 갈등의 골이 깊어져,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기 어려울 때가 있다. 애들 봐서라도 참고 살아야지 하며 애써 서로에게 적당한 무관심으로 지내는, 이른바 휴전상태에 있었다고 치자.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바이러스로 인해, 휴전선이 사라져 버렸다면 그야말로 폭풍전야, 일촉측발인 상황일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다시 선을 그어야 한다. 집안에서 심리적 거리를 둘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합의하고, 정전협정을 다시 맺는 것이다. 부부 간 갈등은 결코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염없이 연기되는 개학으로 인해 아이들도 집 안에 함께 있는 데 부부갈등이 수면위로 올라와 전쟁이 난다면 아이들까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물리적인 거리두기를 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적정선을 찾아 정하자.

마지막은 용서다. 심리적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용서라는 심리처방전을 권하고 싶다. 실제 용서가 결혼 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용서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지은 죄나 잘못을 벌하거나 꾸짖지 않고 덮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용서가 쉽지 않다. 특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나를 믿고 내 편에 서줘야 하지 않느냐는 배우자에 대한 원망과 좌절감은 가슴 깊은 곳에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용서를 더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는 것이, 상대가 나에게 주었던 상처에 대한 마땅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가? 내가 용서해주지 않으면 상대도 처음에는 미안함과 불편함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는 또 다른 원망과 갈등을 낳아 뫼비우스의 띠처럼 출구 없는 악순환에 갇혀 버린다.

현재 배우자와 갈등상태에 있다면,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용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상대를 향한 원망과 분노라는 뜨거운 돌을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물론 기회만 되면 원망과 분노의 돌을 상대를 향해 던져 상처를 줄 수 있지만, 결국 상대보다 내가 입게 되는 상처가 더 크고 깊다. 결국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다.

나는 상대에게 상처 준 적이 없는가?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조심한다 해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나도 상대로부터 용서받아야 한다. 내가 용서하지 않는데, 상대라고 나를 용서하겠는가. 용서는 스스로가 실수 많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상대를 공감해야, 더 깊고 진솔한 관계를 맺으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용서한다고 상대가 변화할 것인가? 물론 상대가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용서를 통해 변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변화시킬 힘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그렇게 착각할 뿐이다. 부부관계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결국 변화의 시작점은 나이며, 나의 변화를 보고 상대도 변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족 간 물리적 거리가 좁아지면서 갈등관계에 있는 사람이 많다. 잠정적인 휴전상태에 있었던 부부에게 전쟁의 위기를 느끼게 하는 지금 이 순간, 세 가지 처방전을 드린다.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제는 저녁이 있는 삶을 넘어, 가족과 진정 함께 하는 삶을 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