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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리만푸어·이석준 "마음 나눌 코드 준비하세요"···'낫심'

뉴시스  기사입력 2018.04.16 13:56

술리만푸어·이석준 "마음 나눌 코드 준비하세요"···'낫심'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석준씨가 공연 도중에 무대 뒤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저를 찾으러 왔을 때 처음 봤어요. 빨리 도착해 매일 조깅하는 '운동선수'처럼 느껴졌죠. 단번에 넓은 마음을 가진 배우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 사람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란 출신 극작가 낫심 술리만푸어(38)는 지난 13일 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한 '낫심'에 출연한 한국 배우 이석준(46)과 만나자마자 십년지기 같은 친구가 됐다.

'낫심'은 '즉흥극'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술리만푸어의 최신작이다. 29일까지 이석준을 비롯해 배우 21명이 순차적으로 처음 보는 대본에 따라 공연한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내용은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공연은 7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당일 처음 만난 술리만푸어, 이석준, 관객의 내면을 마술처럼 한 끈으로 잇는다. 모든 회차는 이미 매진에 가깝다.

이석준은 관객 무릎과 배우 다리 사이 거리가 무릎 한 뼘도 채 안 되는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한 무대를 두 개로 나눠 다른 공간의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주는 '더 헬멧' 그리고 한국 초연을 앞둔 작품으로 배우들의 독백으로만 공연을 이어가는 '킬롤로지' 등 한국에서 공연한 독특한 형식의 작품에 다수 출연했다.

그런 그도 '낫심' 공연을 놀라워했다.

이석준은 "관객 생각과 시선을 돌리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낫심'은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들려주는 것이 신선했다"면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것이죠. 생각한 것보다 더 익사이팅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낫심'에서 배우는 일종의 매개자 역할도 한다. 2004년 시작한 토크쇼인 '뮤지컬 이야기 쇼 이석준과 함께'를 통해 마이크를 들고 관객과 만남에도 익숙한 이석준은 "마이크 경험이 많다 보니 본능적으로 술리만푸어와 관객을 연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캐릭터가 없어 낯설 수도 있는데 그것 자체도 공연으로 승화하더라"고 평가했다.

술리만푸어의 작품이 외국 관객과 만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란에서 공연하지 못 해서다. 전쟁을 반대하는 그는 이란에서 군 복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이후 자신의 대본을 여러 나라에 보냈고, 20여개 국 언어로 번역됐다.

하지만 아직도 모국어인 이란어로 공연하지 못 했다. '낫심'은 이와 관련해 작가뿐만 아니라 배우 그리고 관객이 마음을 한데 모으는 놀라운 순간을 선사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그의 작품은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2017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스파프)'에서 선보인 '하얀 토끼 빨간 토끼'다. 역시 배우조차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즉흥 1인극으로 모든 공연이 개막 전에 매진됐다.

공연 도중 술리만푸어에게 작품 감상을 남기고 싶거나 응원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e-메일 주소를 남긴 덕에 한국 관객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낫심' 작업을 하는 도중이었어요. 한국 관객 반응을 듣고, 한글로 된 '하얀 토끼 빨간 토끼' 대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란 상황이 슬프다고요? 그냥 상황이에요."

술리만푸어는 연극계 디아스포라(Diaspora)라 할 만하다. 고국을 떠나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 중인 그는 세계를 떠돌며 연극 작업을 하고 있다.

"이란에서 수년간 살았죠. 아주 그리워요. 근데 이란을 또 떠났죠. 저는 천생 '떠나는 사람' '이주하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지성적'으로 연극이 제 고향이에요. 연극이라는 곳에서 지적으로 성장했죠. 떠나야 하는 행위가 마음 아프지만, '새로운 미래'라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새로운 개척지를 향해서 떠나야죠."

그는 올해 한국 등 9개국을 돈다. "올해가 끝나면 9개 언어로 내 이름을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웃었다.

가족애가 똬리를 튼 '낫심'은 전작 '하얀 토끼 빨간 토끼'에 비해 한결 따듯해진 느낌이다. 이와 함께 즉흥극이라는 형식은 같으나 세부 구조는 전혀 다르다.

"나이가 들었고, 그사이 결혼도 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변했나 봐요. 아울러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지속해서 내려 하죠."

하지만 연극이 자신이 아는 것을 과시하는 통로가 되는 것은 경계했다. 본인에게 연극이라는 것은 모르는 것을 새로 배우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한글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있죠. 석준씨 아들 이름도 알게 됐고요. 하하."

이석준에게 거듭 호감을 표한 그는 작가와 배우의 관계를 전략가와 전쟁터 병사 관계에 비유했다.

"연극은 배우들의 현장이에요. 그래서 무대에서나 무대 밖에서나 배우들에게 존중심을 표하게 됩니다. 배우랑 그곳에 같이 있고 싶은 것이죠. 특히 저는 리허설을 하지 않더라도 배우와 관객이 함께 있는 순간을 선물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를 철저하게 믿어야 하죠. 석준씨는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배우죠."

이석준은 "배우는 어떤 탈이나 가면을 쓰고 자신을 감춘 채 있는데 술리만푸어는 본인의 작품을 배우에게 선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무대 위에서 이석준이 그대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만족스러워했다.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연출·제작 등 공연계 다방면에서 활약 중인 이석준은 "현재 고민 중인 것은 공간을 바꾸는 작업"이라고 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언제나 무대가 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프로시니엄 무대'(무대와 객석을 구분한 일반 공연장 형태 무대)에 갇힌 것이 아니라 미니멀하면서 직접 감성을 주고받는 형식을 생각하는 중이죠. 전체적인 극 구조보다 그 사람 내면을 보는 공연 말이에요. '낫심'처럼요."

그럼 즉흥극 '낫심'을 보러 오는 관객들을 위한 최고의 팁은 무엇일까. 물론 스포일러는 금물이다.

"어딘가에 꽂을 코드를 준비해 오세요.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담은 코드요. '낫심'은 작가, 배우, 관객이 커넥팅되는 순간이 가장 재미있어요."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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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이재훈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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