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람 박상빈 박소연기자 ]

[불황 시대, 찜질방 장기투숙객 늘어… 전문가들 "노숙인 개념 바꿔야"]

지난 7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한 찜질방에서 중국교포 A씨(70)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A씨가 입고 있었던 옷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고 가진 돈은 2700원뿐이었다. A씨는 숨지기 하루 전 찜질방 관리인에게 "3일 동안 밥을 굶어 배가 고프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있었던 한 남성은 "그는 노숙인 이었다"고 전했다.
일정한 주거 없이 떠돌면서 찜질방에서 '장기 투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제연합(UN) 기준으로 보면 '홈리스(homeless)'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지난 13일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찜질방에서는 이런 장기 투숙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찜질방 매점 관리인은 "이 곳에서 장기 투숙하는 사람은 15명"이라며 "새벽에 일을 나가는 이들도 있고 하루 종일 머무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지방에서 영등포시장에 일하러 오거나 집이 멀어 장기투숙을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찜질방 회원권은 10장에 4만원"이라고 했다. 4만원 정도면 열흘을 따뜻한 곳에서 지낼 수 있는 셈이다.

찜질방 안이나 목욕탕에는 자신의 옷 위에 찜질방 옷을 덧입거나 내복만 입고 자는 등 장기 투숙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여럿 눈에 띄었다. 목욕탕 쓰레기통 옆에는 새카맣게 낡은 배낭 3개가 놓여 있었다.

남자 목욕탕 관리인은 "배낭은 투숙자들의 짐"이라며 "찜질방에서 자는 사람 절반 이상이 장기 투숙자"라고 말했다. 이날 남탕에서는 투숙자 2명과 관리인이 김밥과 소주 등 외부음식 반입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날 광진구에 있는 한 찜질방에서도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장기 투숙자들을 볼 수 있었다. 찜질방 관리인은 이들을 '단골손님'이라고 부르며 개인 옷장을 내어 주는 등 편의를 제공했다.

찜질방 관리인은 "집이 불타서 오는 사람, 일용직 노동자, 빚에 쫓겨 오는 사람 등이 있다"며 "개업한 지 8년이 됐는데 8년 단골손님인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 찜질방의 장기 투숙객들은 대부분 새벽5시면 인력시장에 나간다. 일부는 도박에 최대한 많은 돈을 쓰기 위해 할인이 되는 정기권도 사지 않는다고 했다.

건설업을 한다는 한 남성은 "여기에서 3년에서 5년 정도 지낸 터줏대감들이 서로 가족같이 지낸다"며 "2주에 한 번씩 집에 내려가지만 가족에게는 찜질방에서 지낸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 찜질방에서 남편과 지낸다는 한 여성은 "하루에 두 사람 찜질방비 11000원을 내는 게 쉬운 게 아니다"면서 "남편은 과거에는 금융감독원을 다니고 잘나갔다"고 했다. 그의 주변에는 털모자와 시계, 손톱깎이 등 살림살이가 놓여 있었다.

그는 "카운터 언니랑 친하게 지내면 옷장도 슬쩍 따로 내어준다"면서 "우리에게 정식으로 합류하면 돌아가면서 청소도 해야 한다"고 장기 투숙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찜질방 '장기 투숙객'들도 '홈리스' 개념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길거리를 전전하는 사람만이 '노숙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영등포 관내에서 노숙인 반장으로 통하는 한 경찰은 "노숙자도 돈이 좀 생기면 찜질방도 가고 한다"면서 "찜질방, 만화방, PC방 등 돈 적게 드는 곳은 모두 노숙인들이 잘 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람들을 완전한 노숙인 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일정하게 오갈 데 없고 먹고 잘 데 없는 주거 취약 계층이 사실상 노숙인"이라고 규정했다.

노숙인 재활 잡지 '빅이슈 코리아'의 진무두 국장도 우리나라의 노숙인 개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 국장은 "우리나라는 길바닥에 나앉는 꼴을 봐야 '노숙인'으로 보고 돕는다"면서 "노숙인 대책이 예방 중심이 아니라 뒤치다꺼리하는 형태"라고 꼬집었다.

유엔 기준에서는 찜질방이나 여인숙, 고시원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홈리스'에 해당된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외국인의 경우도 홈리스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6월 시행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노숙인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행 법에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이나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노숙인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진 국장은 '노숙인 등'이라는 애매한 표현 때문에 '홈리스'의 범위가 길거리 노숙인으로 한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숙인보다 '홈리스'나 '주거 취약 계층'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면서 "찜질방이나 고시원, 여인숙 등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도 '주거 취약 계층'으로 보고 체계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IMF 이후 급속히 늘어난 '주거 취약 계층'은 경제가 조금만 휘청거리면 언제든 길거리로 내몰릴 수 있어 '잠재적 노숙 상태'인 만큼 국가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노숙으로 전락하기 전 위기 계층일 때 돕는 게 비용절감 효과도 크다"면서 "이미 희망을 놔 버린 노숙인 상태에서는 지원을 해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중앙 정부의 책임 있는 룰이 없어 지방자치단체들이 홈리스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혼란이 있다"면서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나서 전 세계적인 홈리스 대책인 '주거 복지'로 홈리스 대책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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