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문서위치

  • 취업뉴스

취업뉴스

이력서·자소서

면접

공채자료

취업지원서비스

인사·비즈

커뮤니티

상담

취업뉴스

크게작게글자크기

[인사뉴스] ‘혁신 피로’의 시대, 혁신 실패의 원인과 혁신 성공의 조건

  기사입력 2019.10.07 16:47| 최종수정 2019.10.07 16:49
1. 혁신 실패의 답은 단순하다

필자는 혁신을 위한 T/F에 위원으로 초빙돼 외곽에서 프로그램을 지원한 적이 있다. 이후 혁신에 관한 연구문과 칼럼을 몇 편 썼고, 지금도 "혁신 이야기"를 3개월째 모 매체에 연재하고 있다.

필자가 참여했던 혁신 T/F는 실패했다. 혁신 지침서를 발간하고 세미나를 몇 번 하고 난 뒤 T/F는 해체됐다. 추진하던 혁신은 몇 주 못 가 실종됐다. 홈페이지 한쪽에 있던 배너마저 누군가 치워버렸다. 뚜렷하게 관찰된 혁신 실패의 원인은 세 가지였다.

첫째, 조직의 수장이 지시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지시에 의해 시작됐기 때문에 그가 퇴임하자 끝났다. 수장은 지시만 했다. 자신이 직접 연구를 하거나 글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런 혁신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둘째, T/F라는 게 원래 그렇듯, 소집된 인사들이 그만그만 했기 때문이다. 어느 부서든 핵심 인재, 주요 직위자를 T/F에 내놓지 않는다. 대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T/F로 간다. 그들이 만든 안을 조직 구성원들이 따를 리 없다.

셋째, T/F가 만든 혁신안에 이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이득이 없으면 그것을 따르고 실천할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 조직원 대다수가 먹고 살기 위해서 출근한다고 생각하는 현실에 꿈, 비전, 이상, 가치 같은 추상적 지표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2. 혁신 성공의 대안도 단순하다

만약 이렇게 했더라면 혁신 T/F의 프로그램이 성공했을 것이다 하고 생각해온 것이 있다.

첫째, 조직의 수장이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솔선수범 연구하고 집필해야 한다. 지침서, 매뉴얼, 규정(내규), 법안 등을 자신이 직접 써야 한다. 1960년대 미 국방부의 군사 의사결정(Military Decision-Making) 모델과 1976년 미 육군 기준 야전교범 "작전(Operations)"의 창안이 좋은 예다. 1960년대 이전 미군에는 군사 의사결정 모델이 없었다. 당시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국방장관이 랜드연구소(RAND)에서 데려온 두 경제학자 찰스 히치(Charles J. Hitch)와 알랭 엔토벤(Alain C. Enthoven)이 직접 이 모델을 창안했다. 둘은 모두 국방차관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야전교범 "작전"은 미 육군 교육사령부의 수장 윌리엄 드푸이(William E. DePuy) 장군이 초안을 직접 썼다. 그리고 보병학교, 기갑학교 등 각 병과 학교의 수장인 장군들을 소집해 나머지 부분을 쓰게 했다. 1991년 걸프전 승리의 원동력이 1976년 판 "작전"에서 왔다는 것은 전쟁사 연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둘째, 최고의 인재를 소집해 추진해야 한다. 위에 예를 든 맥나마라가 그렇게 했다. 포드의 대표직을 맡고 있던 맥나마라는 국방장관직을 제의받자 자신과 함께 일하던 혁신팀을 통째로 영입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군은 국가 최고의 인재를 소집하고 혁신에 나섰다. 전쟁 패배 후 독일군은 인력, 예산, 제도를 철저히 통제 당했다. 독일 육군 총참모장 한스 폰 젝트(Hans von Seeckt) 장군은 군사국(Truppenamt agency)이란 조직을 만들고 최고의 인재를 끌어모았다. 장군은 이들에게 독일군 훈련, 편제, 장비 혁신을 일임했다. 독일군이 다시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만큼 성장한 것은 군사국의 힘이었다. (물론 독일군의 성장은 최악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1915년 당시 한스 폰 젝트 장군의 모습(우측에서 세 번째). 그 왼쪽의 망토를 두른 이가 황제 빌헬름 2세이다.

셋째, 내놓은 혁신안이 개인의 목표 달성에 확실히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개인의 목표 달성이 조직의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 형식이어야 한다. 고상한 이상주의로는 복잡다단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한국군 장교 250명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 국방부가 한국 리더의 도약적 성장 없이 승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쟁 중인 군대에서 장교 수백 명을 빼내어 유학시키는 파격 중의 파격을 행한 것이다.

미 국방부의 조치는 적확했다. 선진 군사학을 배우고 돌아온 한국군 장교들의 지휘력은 크게 성장했다. 이후로도 유학은 계속 이어졌는데 미국을 가기 위한 한국군 장교들의 경쟁률은 지금까지도 매우 높다. 이것이 지식, 학력, 출세를 보장하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소위 미국 유학파 장교들은 한국군 발전에 상당히 기여해왔다.

3. 만약 위의 세 가지 대안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사실 쓰고 싶었던 글의 제목은 "제발 혁신 좀 그만합시다"였다. 혁신이란 말만 들어도 다들 피곤하지 않은가? 필자는 혁신이란 말을 들으면 여기저기 몸이 쑤신다. 이제까지 목도한 혁신들은 기저귀도 안 뗀 상태에서 크라우칭 스타트 연습을 하는 모양새였다. 여기저기 상처만 가득한 혁신이었다.

혁신의 악영향을 묵과해선 안 된다. 조직의 반복적인 혁신 시도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염세를 불러일으킨다. 혁신의 반복적 시도는 일종의 만성 혁신 피로 상태를 불러온다. 실속 없는 혁신에 장기간 노출되면 혁신을 하든 말든 1도 관심이 없어진다.

혁신은 단백질 보충제와 같다. 운동하지 않고 보충제만 먹으면 살만 찌고 건강도 해친다. 혁신은 염증 치료를 위한 항생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 처방 없이 함부로 먹으면 내성만 키우게 된다. 그러니 제대로, 똑바로 할 것이 아니라면 혁신은 아예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다. 혁신하지 않는 것이 더 혁신적인 결심일 수도 있다.



  
/ => False
 
  • 공유하기도움말
  • 북마크도움말
  • 인쇄

댓글

작성자명 변경

댓글 등록 시 노출되는 작성자명을 아래 세 가지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별명을 선택한 경우, 사진 노출 및 개인홈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