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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뉴스] 어쩌다 발견한 노동조합 대변인의 하루

  기사입력 2019.11.29 15:42| 최종수정 2019.11.29 15:47


노동조합 언론 담당자들, 대부분 돌발노동



노동조합 언론ㆍ홍보 담당자들은 노동현안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대응에 나선다. 제때 입장이 나가야 노동조합 목소리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슈가 터졌을 때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낼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기자들이 이미 취재를 마쳤을 무렵 입장을 내면 기사에 반영되기 어렵다. 노동조합의 입장은 지난 뉴스가 되는 것이다.


이은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아래 한국노총) 대변인은 "실시간으로 입장을 내야 언론이 기사를 쓸 때 우리 입장을 조금이라도 더 반영할 수 있다"며 "입장을 조금만 늦게 내도 지난 뉴스가 되고 우리의 논평은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가능하면 발 빠르게 대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슈는 수시로 터진다. 그만큼 돌발노동이 많을 수밖에 없다. 입장이 제때 나가야 하기 때문에 성명이든, 보도자료든 오래 붙잡고 있을 수가 없다. 실제 한국노총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8일 주52시간제 보완대책 추진방향을 브리핑한 지 약 2시간 40분 만에 성명을 발표했다.


보도자료 생산량도 만만치 않다. 전국금속노동조합(아래 금속노조) 집계에 따르면 금속노조가 지난해 발송한 보도자료는 하루 평균 1.8건. 현안이 많을 때는 하루 최대 7~8건씩 발송하기도 했다.


수시로 걸려오는 기자들의 전화도 업무의 연속이다. 이은호 대변인은 "전화가 없을 때는 하루에 3~4통밖에 오지 않지만, 많을 때는 60통 정도 올 때도 있다. 이번에 삼성전자노조 설립 때는 통화 중에도 전화가 와서 계속 진동이 울렸다"고 했다.


돌발노동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업무계획은 큰 의미가 없다. 김형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 대변인은 "최근에는 좀 줄어들기는 했지만 대부분 돌발노동이 많고, 계획대로 하는 게 20% 정도"라며 "다른 부서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제목만 알려주고 성명을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정부가 느닷없이 정책을 발표하는 식이어서 계획을 세우고 하는 일은 극히 적다"고 전했다.


돌발노동은 끊이지 않는다. 성명이나 논평을 내지 않더라도 개별 사안에 대한 입장을 물어오는 경우 역시 적지 않다.


얼마 전 박수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임명 소식이 알려졌을 당시 김형석 대변인에게 박수근 위원장 임명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을 물었다. 민주노총은 임명에 앞서 신임 중노위원장 인선 기준을 제시한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첫 통화 이후 정확히 40분 만에 내부 논의를 거쳐 5줄 분량의 공식입장을 텔레그램으로 보내왔다.

기사화 쉬운 표현ㆍ조합원에 울림 주는 메시지 고민해야

 
단순히 입장만 정리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성명과 논평에는 노동조합의 공식입장이 담긴다. 입장을 알리려면 언론이 인용하기 좋은 표현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은호 대변인은 "과거 성명을 보면 좌시하지 않겠다거나 이후 모든 책임은 정부 당국에 있다와 같은 문구가 많다. 주장이 많이 담긴 표현보다 사실에 대한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을 더 많이 담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명서는 한편의 완성된 글이 아니라 한 줄이라도 언론에 인용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기 때문에 내가 기자라면 어떤 문장을 인용할지 생각하고 성명서를 쓴다"고 했다.


조직의 활동 방향에 맞는 표현도 고민해야 한다. 이은호 대변인은 "한국노총 운동 방향이 대중적ㆍ합리적 방향을 추구하기 때문에 성명서도 그 방향에 맞게 거친 주장이나 구호성 표현보다 사람들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표현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표현만 정리된다고 노동조합 입장이 보도되는 건 아니다. 관심 사안이 효과적으로 보도될 수 있도록 언론과의 공동작업도 필요하다. 이은호 대변인은 "예를 들어 IT 노동자 설문조사를 진행해서 토론회를 열었을 때 방송에 보도되도록 하려면 방송은 그림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인터뷰가 가능한 사례를 미리 섭외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입장을 전하는 대상에 따라 메시지 느낌을 달리하기도 한다. 일선 기자를 대상으로 작성한 보도자료는 인용되기 좋은 표현과 문장을 고민한다. 반면,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성명ㆍ논평은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담아 작성한다.


금속노조 언론 담당을 맡고 있는 장석원 기획부장은 "일반적으로 배포되는 보도자료는 100% 기자들만 생각하고 나간다. 성명과 논평은 거의 조합원을 상대로 하는데, 조합원들이 읽었을 때 전체적으로 내적 울림을 느낄 수 있도록 작성한다. 예를 들어 투쟁이 정리되는 국면에서는 조합원에게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한다"고 했다.


사실관계를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설득력을 갖추기도 한다. 장석원 부장은 "잘못했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왜 잘못됐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왼쪽으로 25도 틀어져 있으면 40도 틀어졌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왼쪽으로 틀어진 걸 오른쪽으로 틀어졌다고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슈를 설명할 수 있는 프레임 설정도 중요하다. 공식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목소리를 전하려는 의도뿐만 아니라 여론의 지지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사안의 본질을 규정하는 프레임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김형석 대변인은 "최근 사용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명칭도 박근혜 정부 때 사용된 표현인데 굉장히 모호하고 비공식적 용어여서 프레임 전략의 하나라고 보기 때문에 디지털 전환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명칭 사용이나 의제나 이런 것들을 되도록 우리 쪽 목소리가 커질 수 있도록 사용하려고 노력하지만 마음대로 잘 안 돼서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노동조합 시각과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쟁점을 정리하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장석원 부장은 "일선 기자들에게 입장이 전달될 때 정확한 쟁점과 논점, 조직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것들을 당연히 고려한다"면서도 "게임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금속노조는 복수의 재벌을 상대한다. 이들은 복수의 언론 담당을 두고 있다. 매체 환경은 보수지ㆍ경제지 중심이고, 진보적 매체는 기계적 중립에 빠진 상태다. 그는 "기사 논조는 포기하고 써주기만 해다오라는 식으로 보도량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물론 이들이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나마 목소리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꾸준히 입장을 전하는 게 노동조합 언론ㆍ홍보 담당의 역할이다.


이은호 대변인은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어떤 입장이 나간다고 하면 반드시 확인하고 반박할 게 없는지 찾아본다"고 말했다. 김형석 대변인은 "정부가 사용한 언어와 논리를 거꾸로 우리가 사용해서 돌려준다거나 필요하면 정부의 의도와 감추려는 것들을 드러내는 식으로 입장을 낸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 언론 담당자의 고충은?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에서 논란은 불가피하다. 외부의 비판뿐만 아니라 내부 조합원들의 크고 작은 불만이 발생하기도 한다. 김형석 대변인의 말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문제로 쟁점이 첨예했을 때는 장난 아니게 얻어맞았다. 작성한 문구마다 비판이 제기됐다.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문제제기가 있었다.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안을 정부가 낼 것이고, 그에 따라 노조법을 바꿀 것이라고 했을 때도 이미 들은 얘기였기 때문에 우호적으로 입장을 썼다. 그런데 현장에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비판을 받았다. 정부가 비준안을 먼저 던지고 이후에 노동법을 개정했어야 했는데 정부는 두 가지 안을 동시에 던졌던 것이다. 지금 보면 내가 잘못한 게 맞다."


조직 기조나 내부 분위기와 공식입장 사이에 온도차가 있을 때는 먹물 냄새 난다는 말도 듣는다.


장석원 부장은 "팩트는 근거라는 측면에서, 표현은 논리적 정합성이라는 측면에서 정리한다"며 "그런 기준을 담아서 정리하면 조직 입장에서는 너무 약한 것 아니냐고 한다. 조직은 투쟁을 강조하는데, 언론을 상대하려면 왜 투쟁하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그 이야기를 하면 유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충도 있다. 노동조합 특성상 언론ㆍ홍보 업무에 대한 숙련도를 키울 수 있을 만한 구조나 내부 인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법률적 분야는 변호사, 노무사 등 전문가가 맡기 때문에 업무 특성과 전문성이 확실히 구분된다. 그러나 언론 담당은 전문성이 명확히 구분되는 분야가 아니다. 언론 담당을 하려는 사람도 많지 않다.


기존 노동운동 영역 안에 숙련된 언론 담당 인력을 육성하려는 문화가 형성돼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노동조합 안에서도 이전과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법적 해결방식이나 여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법적 수단과 언론보다 조직력ㆍ투쟁력으로 이슈를 돌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노동조합이 언론 대응에 역량을 집중할 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노동운동의 꽃은 조직이다. 조직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언론 대응 업무에 힘을 실어달라는 주장은 노동조합 활동 방향과 맞지 않는 요구일 수 있다. 노동조합이 언론을 통해 승리하는 조직은 아니라는 것이다.


장석원 부장은 "조직을 관리하고 움직이게 하는 업무에 비하면 명함을 내밀기는 힘들다"면서도 "대언론 사업 부문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실제로 자원과 역량을 투입하는 것은 대단히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내 입장에서는 인력을 더 충원해주면 좋겠지만 건의는 안 한다. 왜냐면 우리가 쓸 수 있는 인력과 자원이 한정돼 있고 그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조직과 투쟁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인력을 충원해준다고 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내 입으로 더 보내달라고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노동조합 메시지에도 새로운 변화 오나

노동조합이 전하는 메시지에 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아래 화섬식품노조)은 최근 다양한 콘텐츠 기획을 통해 노동조합 목소리를 보다 친숙하게 전달하고 있다. 주로 대의원대회 등에서 정한 투쟁 사업장들이 왜 투쟁하고 있는지,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류호정 화섬식품노조 선전홍보부장은 "투쟁할 때 화가 나지만 처음부터 천막사진에 화난 얼굴, 강경한 문체를 사용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먼저 보여주면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쉽게 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류호정 부장은 실제 화섬식품노조 한국음료지회가 천막농성을 할 당시 투쟁현장 사진 같은 강경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한국음료에 대한 인지도 역시 낮았기 때문에 강경한 이미지를 먼저 노출하면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신 류호정 부장은 한국음료에서 생산하는 코카콜라, 미닛메이드, 파워에이드 등 사람들에게 친숙한 제품 이미지를 활용해 투쟁 배경을 설명했다. 회사 제품에 자부심이 강한 한국음료지회 조합원들 반응도 좋았다고 한다. 그는 네이버가 (손)자회사 정규직을 쥐어짜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포도 알맹이를 이용해 네이버 기업구조를 설명하기도 했다.




류호정 부장은 "내부 조합원을 상대로 한 조직사업은 조직실에서 더 잘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 우리 소식을 최대한 널리 알릴 수 있어야 한다"며 "정보격차와 노동에 대한 혐오를 낮추기 위해 대중적인 언어와 일상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간혹 천막사진이나 현수막 사진을 넣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담당자가 젊은 꼰대라 안 된다고 전해달라고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새로운 시도인 만큼 반발도 있다. 강경한 이미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민주노총 가치와 정체성이 부정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조합원들도 있기 때문이다.


류호정 부장은 "언론이나 정부가 만든 (노동조합에 대한) 편견도 있지만 과연 우리가 그 편견을 재생산하고 있는 건 없는지, 21세기 홍보 트렌드에 잘 따라가고 있는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민주노총은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해내는 조직이라고 느꼈는데 조직과 투쟁에 있어서는 그 말이 어울린다. 그런데 홍보 부문에서는 최선을 다 해 봤는지, 해내야 한다는 정도의 결의를 다져봤는지 생각해봤는데 그건 아니었다고 본다"고 했다.


류호정 부장은 노동조합이 가진 채널을 언론 이상의 파급력을 가진 채널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류호정 부장의 구상이 노동운동 언론ㆍ홍보 업무의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까.


그는 "옛날에는 기성 언론이 보도해주지 않으면 파급력이 없었지만 지금은 구독자 수십만 명을 가진 인플루언서(Influencer)들이 언론을 능가하는 파급력을 보이기도 한다"며 "우리도 그 정도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영 기자 kdy@elab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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