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노동법률] 김대영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을 무렵 주요 노동정책들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최저임금 인상 기조가 흔들렸고, 주52시간제 시행에 제동이 걸렸다. 노동계는 공약 폐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에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주요 정책이 당초 계획과 다르게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노동정책, 고용참사 등 외적 요인으로 변화 불가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를 이끌었던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정책이 변질됐다고 평가했다. 이병훈 교수는 지난해 12월 논문을 통해 정책이 변질된 배경을 분석했다.

그는 논문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 변화에 관한 연구에서 변화 배경을 크게 두 갈래로 설명했다. 하나는 경기침체ㆍ고용참사 등 외적 요인이다.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일자리 지표가 악화되면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가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다.

실제 취업자 수 증가폭은 2018년 초반부터 감소했다. 2018년 2월 취업자 수는 전년도 같은 달보다 10만4,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달인 1월과 2017년 2월 취업자 증가폭은 30만명대를 웃돌았다.

고용참사로 불린 사건도 있었다. 2018년 7월과 8월 취업자 수 증가폭이 전년도 같은 달보다 3,000~5,000명에 그친 것이다.

▲지난해 7월 12일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13차 전원회의에서 2020년 최저임금이 2.87% 인상된 시간당 8,590원으로 의결됐다. (사진=뉴시스)

취업자 수가 줄어들자 최저임금 인상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되면서 저임금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해석이 힘을 얻었다.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8년 16.4%, 2019년 10.4%, 2020년 2.9%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여론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부정적이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2018년 7월 4주차 조사 결과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자 가운데 12%가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꼽았다. 부정평가 이유 중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

주52시간제 시행도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를 하락시킨 원인으로 지목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2018년 7월 2~4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석 달 만에 60%대로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국정 지지도는 이전까지만 해도 70~80%대를 유지해왔다.

이에 대해 리얼미터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은폐, 생산시설 확대 의혹 외신 보도, 종합부동산 세재 개편 권고안 논란, 예멘 난민 수용 논란, 주52시간제 시행 논란 등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정부는 앞서 주52시간제 계도기간을 부여하겠다고 밝혀 정책 지지집단으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병훈 교수는 정부가 일자리 실적에 대한 비판 여론과 고용참사를 마주하면서 기존 정책을 수정한 것이라고 봤다.

그는 논문에서 "문재인 정부가 고용 증대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에게 부담을 안겨주는 친노동 정책과제들을 계속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노동정책 기조를 변화시킨 것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정책주도집단, 실행능력 부족으로 노동정책 목표 의식 약화"

이병훈 교수는 정책이 변화된 핵심 원인으로 실행 의지가 약화된 점을 지목했다. 정책 실행능력이 부족해 정책대상자들의 반발과 반대진영 공세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했고, 결국 의지가 약화됐다는 분석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 시행을 둘러싼 논란이 맞물렸던 2018년 7월, 여당 안에서는 소득주도성장 속도조절론이 제기됐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경기하강국면 진입이라는 부정적 실행 여건과 그 정책 결정에 따른 부정적 파급 효과로서 소상공인의 거센 반발이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처할 수 있는 대책 없이 강행했다는 점에서 정책주도집단은 치밀한 집행전략의 부재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는 "정책대상자들의 기대를 한껏 높여준 가운데 비정규직 전환 추진에 수반되는 실행조건과 파생문제를 사전에 대비치 못했다"고 비판했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노동리뷰> 1월호에서 "정규직 전환자 다수가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 방식으로 전환됐고 처우 개선이 미흡했으며, 일부 사업장에서 자회사로 전환을 반대하는 노사분쟁이 어이지는 등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적절한 추진 시기를 놓친 대표적인 사례로는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가 꼽혔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같은 자료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은 선 입법 후 비준, 선 비준 후 입법 논란 속에 정부가 타이밍을 실기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여러 의견을 종합하면 노동정책 변화는 정부가 추진 전략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요약된다.

이병훈 교수는 "현 정부 정책주도집단은 친노동정책 집행에 있어 사전 준비 불철저, 전략적 대응 미숙, 기존 추진방식 답습 및 선행 정책경험의 학습 결여 등과 같이 실행능력의 여러 한계를 드러내며 스스로 정책 변질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300인 이상 기업에 대한 주52시간제 시행을 이틀 앞둔 2018년 6월 29일 오전 김영주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간 단축 시행 준비상황을 설명하고,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동정책 변화, 단기적 대응? 부작용 해소?

노동정책 변화는 단기적 대응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정책에 대한 유권자 평가가 윤곽을 드러내기도 전에 정책 방향이 수정됐기 때문이다.

사회ㆍ경제정책에 대한 유권자 평가는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다. 그러나 정부는 출범 1년 만에 비판 여론과 반대진영 공세로 정책 수위를 조절했다. 정책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수위 조절이 이뤄진 것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취업자 증가폭이 줄어든 그 시점(2018년 중반)에는 정부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단기적으로 고용을 끌어올릴 수 없다"며 "(당시 노동정책 변화는) 단기적 대응"이라고 말했다.

정책 방향을 선회한다고 해서 여론이 당장 우호적으로 돌아서는 것도 아니다. 서복경 연구원은 "사람들이 경기가 안 좋다고 체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이유가 최저임금 때문이라는 프레임이 한 번 만들어지면, 이에 대한 안티 프레임이 생기고 프레임 간 경쟁을 거쳐 여론이 움직이는 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특히 사회ㆍ경제적 사안은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직접적이지 않다. 호불호가 갈리는 당사자 집단이 파편화돼 있고, 이들 사이의 대립 구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치적 사안은 여론이 찬반으로 양분돼 큰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모양새다. 반면, 노동 관련 사안은 노ㆍ사ㆍ정 3자 구도를 바탕으로 각기 다른 입장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인다. 각 집단 안에서 의견이 대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체적인 여론 지형이 곧장 드러나지 않는 이유다.

서복경 연구원은 "사회ㆍ경제정책의 후퇴는 정치적 이슈인 검찰개혁이 후퇴된 것만큼 여론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변화를 통해 노동정책 부작용을 해소하려는 시도라는 평가도 있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책은 항상 의도한 효과와 의도하지 않은 효과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며 "노동정책들이 의도하지 않은 효과들을 나타내면서 부작용이 발생했고,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정책을 다시 조정하는 모습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책 변화 절대악 아냐...균형점 찾아야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 변화를 선택했다면 공약 파기라고 몰아세울 수만은 없다. 민주적 정치과정에서 의견 수렴을 거쳐 정책을 수정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공약에 대한 정치적 책임과 민주적 정책결정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이는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다.

미국, 영국 등 다수대표제 국가는 집권한 정치세력이 임기 동안 책임지고 정권을 이끌어간다. 이러한 모델에서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책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합의제적 국가 모델을 취하고 있다. 어떤 정당이 다수당이 되더라도 연립정부를 구성해 다른 정당들을 협상 테이블에 참여시킨다. 합의제적 모델에서는 정책이 정당 간 합의를 통해 도출되기 때문에 1당이 교체돼도 정책 변화가 크지 않다.

한국은 어느 한 모델로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현출 교수는 "우리나라는 참 어중간한 형태"라며 "어떤 공약이 대선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 국민들의 위임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따져본다면, 그렇게 볼 수 없다는 경향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대선 때는 표를 얻기 위해 정책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면서 선거가 끝나고 나면 공약이었다면서 추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정책 변화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납득 가능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공약을 추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보여줬거나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정책 변화를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복경 연구원은 "공약은 내가 이렇게 하고 싶다는 약속이기 때문에 100% 그대로 나올 수 없는 약속"이라며 "야당과 예산도 조정해야 하고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은 절충도 해야 하는데, 핵심은 공약한 입장에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능할 만한 정책을 내세웠지만 실현이 어려워졌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허황된 약속을 해서 애시당초 불가능한 약속도 있을 수 있다"며 "계획 단계의 현실성 문제와 이 계획이 지켜지지 못한 이유에 대해 선거권자들이 납득 가능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이병훈 교수도 정책 변화의 근거가 충분하다면 납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현 정부 정책 변화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논의할 여지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병훈 교수는 <노동법률>과의 통화에서 "정책에 따라서는 시행하다 환경이 바뀌거나 정책 대상자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에 따라 조정과 변화를 할 수도 있다"며 "정책을 수행하는 사람이든, 밖에서 평가하는 사람이든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나 충분한 근거를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이 변화된다면 이론의 여지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경우가 아닌 상황에서, 공약한 것보다 정책이 후퇴했다면 왜 그렇게 후퇴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 보좌관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


4월 총선서 결판?..."사회ㆍ경제정책 평가 아직 일러"

유권자들의 평가 결과는 선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선거 주기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ㆍ경제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은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오는 4월 총선에서 사회ㆍ경제정책 평가가 이뤄지기에는 기간이 짧다는 평가다.

현 시점에서 유권자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선거는 대선이다. 대선을 앞둔 시기가 되면 정부 평가담론들이 체계화되기 시작한다.

서복경 연구원은 "대선을 1년 반 정도 앞두면 평가담론들이 체계화된다"며 "이번 정부에서 어떤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을 했고 경제적으로는 어떤 결과를 냈는지, 공약달성률은 어느 정도인지 이런 정보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하면 유권자들이 파편적으로 갖고 있던 누적된 정보값들이 종합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번 총선에서 노동정책에 대한 유권자 승인을 얻었다고 확신할 수 있으려면 정책선거가 이뤄져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정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에 대한 토론이 진행돼야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노동정책을 판단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현출 교수는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의 위임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정책에 대한 선거 공약을 확실하게 그려야 한다"며 "선거 때 공약을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묻어 놓다가 선거에서 이겼다고 마음대로 추진하는 것은 무리리"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가 기존 정책을 안착시키는 데 집중할 경우 노동계와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정희 연구위원은 앞서 인용한 자료에서 "한편에서는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를 하더라도 대선이 2년여 남은 시점이기 때문에 이미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안착을 위한 관리에 더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럴 경우 공약과 국정과제에서 제시된 노동정책을 제대로 이행하라는, 정책 추진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라는 노동진영의 요구와 불가피하게 갈등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대영 기자 kdy@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