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노동법률] 김대영 기자=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이 민간부문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추진 이후 전체 비정규직 규모는 오히려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정규직 전환이 민간부문으로 이어지려면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에도 전체 비정규직 규모는 증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정부가 2017년 7월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정부는 당시 "공공부문 일자리의 마중물 역할로 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공공부문이 상시ㆍ지속적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모범 사용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 2년 6개월 동안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19만3,25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19만3,252명. 정부가 전환하기로 한 목표 인원(20만5,000명) 중 94.2%다. 전환이 완료된 인원은 17만3,943명이다. 이 가운데 75.9%(13만1,988명)는 직접 채용됐고, 23.6%(4만978명)는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제3섹터에 고용된 인원은 0.5%(977명)다.

정부는 공공부문이 모범 사용자 역할을 하면 정규직 전환 흐름이 민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공공부문이라도 정규직 전환에 나서야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고용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직후였던 2017년 5월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조치가) 다른 공공기관과 민간으로까지 확산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며 이 같이 밝혔다.

당시만 해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 민간으로 확산되는 모양새였다. 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 이후 주요 기업들이 정규직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았던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통신업계에서 정규직화 방침이 연달아 발표됐다.

파리바게뜨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사례다. 고용노동부는 같은 해 9월 파리바게뜨에 제빵기사 5,378명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사법처리할 계획이라고 했다. 파리바게뜨 노사는 이듬해 1월 제빵기사들을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흐름은 더 이상 민간부문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여러 기관이 내놓은 통계를 보면 비정규직 규모는 이전보다 뚜렷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2019년 8월 기준 748만1,000명. 전체 임금근로자 중 36.4%다. 전년도 같은 달보다 86만7,000명 늘었다.

통계청은 조사 방식이 개선돼 기간제 근로자 35만~50만명이 새롭게 포착된 결과이기 때문에 과거 통계와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통계청 설명대로 최대 50만명이 새롭게 포착된 인원이라고 봐도 36만7,000명이 늘었다. 적지 않은 증가폭이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모범 사용자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민간에도, 일반 노동시장에도 확산될 여지를 갖고 있다는 의미인데 정부만 정규직 전환을 한 것"이라며 "통계청 조사를 보면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시장에서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고 평가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비정규센터)는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감소세를 보이던 비정규직 규모가 2019년 다시 증가했다고 밝혔다.

비정규센터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비정규직이 2019년 8월 기준 853만6,000명으로 전년도 같은 달보다 35만6,000명 늘었다고 주장했다. 같은 기간 정규직은 15만8,000명 증가했다. 비정규직 증가폭이 정규직 증가폭을 웃돌았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일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간부문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이 답?


전문가들은 민간기업이 정규직 전환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정희 연구위원은 "현재 시점에서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이) 마중물 역할을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며 "민간부문으로 정규직 전환을 확산시키려면 법 제도를 통한 방법이 있고, 일정한 혜택으로 유도하는 방안이 있는데 그런 방안이 현재까지 확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했던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제도가 함께 추진됐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제도는 출산ㆍ휴직 등으로 결원이 생긴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정책이다.

문 대통령은 당선 이후 앞서 말한 인천공항공사 방문 당시 "직원들이 출산으로 인한 휴직, 결혼과 같은 납득할만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전부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제도는 도입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일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올해 정책과제를 제시했지만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제도는 빠져 있었다.

이정희 연구위원은 지난 1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행하는 <월간노동리뷰>(제178호)에서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점을 한계로 꼽았다.

그는 "전체 비정규직 중에 공공부문 종사자는 5%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번 정책이 전체 노동시장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 주목됐다"며 "이런 점에서 공약에서 제시된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제도 도입 등이 추진되지 못한 것은 한계"라고 꼬집었다.

김세진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은 "정부ㆍ여당이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성과 위주로만 보고 고용의 질에 관련해서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해야 민간부문도 정규직 전환을 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반론도 있다.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제도를 도입하면 오히려 파견이나 사내하도급 형태가 증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7년 9월 발표한 연구용역보고서(연구책임자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간제근로 사용사유 제한은 노동시장의 과도한 경직화를 유발하고, 그 적용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확산돼 법적 불안정성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아가 파견이나 사내하도급으로 도피 현상이 급증할 우려가 있고, 또 다른 변칙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등 입구규제의 폐해가 더욱 커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이나 유럽연합(EU) 지침에도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제도는 포함돼 있지 않다. 또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제한하면서 사유까지 제한하는 나라는 프랑스뿐이라고 전했다.

▲2018년 11월 28일 서울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노동자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사진=뉴시스)

"근로감독으로 민간부문 정규직 전환 유도해야"


파리바게뜨 사례처럼 근로감독을 활용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근로감독을 통해 민간부문 정규직 전환을 이끌어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희 연구위원은 "정부가 정권 초기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이 불법파견에 해당된다고 판정하면서 자회사 소속이기는 하지만 제빵기사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근로감독을 통해 불법적 고용관행을 찾아내서 시정조치하고, 이행하지 않는 데 대해 패널티를 주는 방식이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무기계약직과 자회사 소속 정규직 형태로 전환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김세진 정책부장은 "현재 무기계약직과 자회사 소속 정규직 형태는 고용이 안정된 것만 빼면 (처우는) 비정규직과 다름없기 때문에 올바른 형태가 아니"라며 "(무기계약직과 자회사 전환 방식은) 고용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놓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 3일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지난 2년 6개월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성과를 토대로 아직 정규직 전환을 완료하지 못했거나, 갈등을 겪고 있는 일부 기관에 대해 관계부처 협력 및 전문가 컨설팅, 현장지원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대영 기자 kdy@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