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윤 이그잼 대표

<고시학원이 밀집한 서울 노량진에 공무원시험에 강하다는 이그잼 고시학원이 있다. 2년 전 이곳에 터를 잡았는데 학원답지 않은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면서 빠르게 크고 있다. 지난해엔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업체인 에이스일렉을 사들여 코스닥에 우회 상장하는 데 성공했다. 정재윤(43) 이그잼 대표는 “앞으로 교육사업과 제조업을 두 축으로 삼아 우량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4000개 강좌에 회원 80만 명=정 대표는 독특한 경력을 가졌다. 용인대에서 유도와 태권도를 전공한 뒤 고려대 통계학 석사학위와 한국체육대 박사학위를 땄다. 그는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해 교육사업으로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2000년 100만원으로 지인의 사무실 한쪽에 책상과 의자를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인터넷으로 수험정보와 서적을 팔았다. 2001년 업계 최초로 동영상 온라인 강의에 나섰다. 이때부터 공무원시험 준비학원 사이트로 쉽게 기억되도록 ‘exam.co.kr’이라는 도메인을 사용했다. 직접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전국 대학의 유명 강의를 녹화했다. 오프라인 학원이 온라인으로 영역을 넓히는 게 보통인데 이그잼은 그 반대였다. 정 대표는 회사를 알리기 위해 지난해까지 늘 홍보 스티커를 갖고 다녔다. 만나는 사람마다 스티커를 나눠줬고 식당이나 화장실에도 붙였다. 이그잼 사이트엔 현재 4000여 개의 강좌가 올려져 있다. 분량은 자그마치 18테라바이트다. 2.5테라바이트는 원고지 80만 장 분량으로, 백과사전 한 질 정도의 정보를 담을 수 있으니 엄청난 정보다. exam이란 도메인 가치도 100억원을 넘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더욱 좋은 콘텐트를 확보하기 위해 2002년 서울 종로의 고시학원을 인수했다. 2006년 고시 학원가인 노량진으로 진출했다. 고시학원은 역시 노량진에 있어야 경쟁 속에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남부고시학원이 전통의 강자로 자리 잡고 있었고, 대기업인 메가스터디와 웅진씽크빅이 버티고 있었다”며 “호랑이 굴로 뛰어든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학원과 다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매년 12월 설명회를 열어 국가고시를 지망하는 잠재 고객에게 시험의 흐름을 짚어주고 일정과 준비방법도 일러줬다. 강남 수능학원들이 흔히 쓰는 입시설명회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수강생의 시험성적을 컴퓨터에 입력해 분석한 뒤 취약한 부분을 집중 공략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경차 마티즈를 걸고 경품행사를 벌이는 한편 학원 건물 외벽의 멀티비전으로 ‘맛보기 강의’도 선보였다. 이런 마케팅에 힘입어 이그잼은 현재 월평균 수강생 1만2000명, 온라인 회원 80만 명으로 성장했다. 수험서적 출판과 유통에도 손을 대 2006년 19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새로운 도전 에이스일렉=이그잼은 지난해 7월 에이스일렉의 지분 21.89%(213만 주)와 경영권을 200억원에 인수해 코스닥에 우회 상장했다. 에이스일렉은 1994년 설립된 PCB 생산 전문업체다. 1~2년 안에 공격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데 직상장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 이 방식을 취했다고 설명했다. 에이스일렉은 639억원을 들여 이그잼 주식을 몽땅(679만 주) 사들여 자회사로 편입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지난해 8월 이그잼 지분 취득과 재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698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에이스일렉은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아주 실한 매물이었다. 부실자산이 없고 현금자산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공급처와 뛰어난 기술력도 갖고 있다. 정 대표는 “제조업은 처음이지만 회사가 알짜배기이고 직원들도 우수해 큰 걱정은 안 한다”고 말했다. 투자할 돈을 확보한 그는 올봄 신촌에 대형 학원을 세워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LEET), 의·치학 전문대학원 입학시험(MEET·DEET), 공직 적격성시험(PSAT·행정고시나 외무고시, 공기업에 도입) 분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