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전문그룹인 대성그룹은 요즘 영화 산업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계열사인 바이넥스트창업투자는 2003년부터 '괴물' '웰컴투 동막골' '올드보이' '마라톤' 등에 투자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올해엔 대종상과 부천영화제 행사를 후원했다. 두 영화 관련 행사의 동영상 콘텐트 등을 코리아닷컴의 새 단장에 활용하고 있다. 대성은 코리아닷컴을 '종합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테마파크'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에너지와 영화라는 이질적인 분야를 연결하는 고리는 김영훈(54.사진) 회장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영화 매니어인 그는 일주일에 세 편꼴로 영화를 본다. 서울 인사동 동덕빌딩의 회장실 한쪽에는 대형 스크린과 프로젝터가 갖춰져 있다. 그룹 임직원들은 매주 월요일 회의 때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본다. 지하 3층 서고에는 김 회장이 2002년 기증한 영화.다큐멘터리 DVD 등 5500여 점의 영상물이 가득 들어 있다. 김 회장이 '영화 경영'에 푹 빠진 이유는 뭘까. 그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해온 제조업이 '효자산업'이라면, 앞으로의 성장을 주도할 '효녀산업'은 문화산업"이라고 임직원에게 종종 강조한다. 그는 전통적인 사업분야인 도시가스와 에너지 개발에 고부가가치산업인 영화산업을 접목해 그룹의 도약을 이룬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30여년 전 이스라엘에서의 경험도 그의 이런 구상을 하는데 도움을 줬다.1970년대 초 미국 유학 도중 그는 이스라엘의 성지 여리고에서 강도를 만났다. "그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보자 뜬금 없이 '태권도를 할 줄 아느냐'고 묻더군요. 별 생각 없이 '한국 사람들은 모두 태권도를 할 줄 안다'고 했더니 줄행랑을 쳤어요. 알고 보니 바로 앞 작은 극장에서 한국 태권도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던 겁니다." 일찌감치 '영화'의 위력을 깨달은 셈이다. 김 회장은 요즘 뉴질랜드에도 자주 간다. 한국 영화산업이 도약하려면 판타지 영화인 '반지의 제왕'을 계기로 세계 영화 제작의 중심으로 떠오른 뉴질랜드의 영화산업 육성전략을 벤치마킹해야한다는 생각에서다. 최근 뉴질랜드 영화사가 제작하는 블랙코미디 영화 '블랙십'에 투자했고, 뉴질랜드의 세계적인 특수효과 전문가인 리처드 테일러를 부천영화제에 초청하기도 했다. 그는 "반만년 역사와 문화유산, 높은 교육수준, 감성이 풍부한 국민성 등을 갖춘 한국이 충분히 뉴질랜드를 능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룹의 주력인 에너지 사업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대성은 2001년부터 일조량이 풍부한 몽골과 동남아.아프리카 국가들을 겨냥해 '솔라윈' 복합발전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태양열과 풍력 발전을 결합해 값싸고 영구적이며 환경 보존에도 기여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개발하자는 취지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해저 파이프라인을 통해 말레이지아.태국.베트남.홍콩.중국 등지로 수송하는 AGG프로젝트와 PEG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높다. 이런 활동을 하며 김 회장이 아쉬움을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 정부가 값싸게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정책이다. 그는 "지나치게 낮은 에너지 가격이 한 겨울에 속옷 차림으로 지내는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긴다"며 "세계 자원 확보전에 기업들이 맘놓고 뛰어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에너지 가격의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