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교육계에 몸담아온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광복 이후 최대의 혼돈을 맞고 있는 작금의 교육현실을 바라보기가 실로 착잡하다. 교실이 붕괴된다고 아우성친 것이 벌써 몇 년째인가. 이제는 급기야 교사들이 수업을 등지고 거리로 나와 ‘투쟁’을 하고 교대생들이 대학본부를 점령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누가 우리 교원들을 거리로 내몰았는가.
2000여억원의 예산을 쏟아붓고도 교사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는 교원성과급,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를 초등교사로 임용하겠다는 ‘중초임용’, 교육현장으로부터 끊임없이 수정과 연기를 종용받고 있는 7차 교육과정,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겠다고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교실증축 등 이유는 헤아릴 수도 없다. 제도 제정의 취지야 어쨌건 하나같이 지시하고 규제하며, 혹은 너무나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들이었다.
제발 정부는 이제 그 즉흥적인 교육정책들을 그만 만들어내야 한다.
40여년 전, 코가 얼어붙는 톱밥난로 교실에서 양은도시락을 까먹으며 몇 십리씩 걸어 학교를 다니던 시절, 급식이니 정보화교육이니 학교운영위원회니 이런 거창한 것들이 없었던 그 시절 교사들은 존경받았고, 학교는 그야말로 함부로 더럽힐 수 없는 성역이었다. 그럼에도 왜 정보화니 첨단이니 하는 21세기에 유독 교육만은 거꾸로 가고 있는가.
교육 붕괴의 원인은 수만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그 핵심이 무리한 교원 정년단축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정부는 학부모와 학생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명분으로, 또 경제난을 내세워 경륜 있는 교원 1만5000여명을 한꺼번에 몰아냈다. 이러한 교원 퇴출 정책은 자존심 상한 교원들의 대량 명예퇴직 신청으로 이어졌고, 98년 이후 5만여명에 달하는 교원이 한꺼번에 정든 교단을 떠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년단축의 최대 오점은 수적 감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이 많은 교원은 무능하다는 잘못된 논리로 경륜 있는 교원들을 불명예스럽게 교단으로부터 내몰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정부는 그 교원들을 다시 기간제 교사로 채용하는 모순을 범했다.
그 정년단축의 여파는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무리한 정년단축은 사상 초유의 교원수 부족사태를 초래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중초임용’은 정부의 교원수급 정책 실패의 결정판이다. 중등교사를 초등교사에 임용할 것이라면 애초에 초등교원 양성기관이 따로 있을 필요가 무엇인가. 과연 이 시점에서 정년단축의 의미와 성과는 무엇이고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정부가 교원수급 등으로 얽혀있는 지금의 난국을 풀 길은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정년 연장은 첫째, ‘중초임용’이라는 편법인사 정책을 보류시키고 교원수급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하고, 명예퇴직 신청자를 제한하면 2003년까지 정부가 필요로 하는 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무리한 학급당 학생수 감축계획의 탄력적 운용과 퇴직교원의 적절한 기간제 교사 채용 등으로 교원수급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다.
둘째, 교원들의 상한 자존심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선생님들의 사기앙양은 곧 교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바로 학부모와 학생의 요구가 아닌가.
셋째,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스스로 바로잡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실추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물론 그토록 강행했던 정책을 번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우리 교원들도 반성할 점이 있다. 어려움은 십분 이해하지만 교원이 배우겠다는 학생을 뒤로하고 교단을 비운다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교원들 스스로가 자기연찬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가 자문해야 한다. 바로 가르치는 사람은 항상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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