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직 공무원 채용을 위한 국가고시를 철폐해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도 한참 무르익어 가는 오늘인데 웬 과거(科擧)타령이냐라는 것이다. 공무원의 선발과 임용을 각 부처에 돌려주어 업무에 걸맞는 전문인력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하긴, 현행 국가고시와 과거는 전혀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한 재야학자는 조선엔 과거제도가 있어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 있는데 일본은 신분제도에 묶여 있으니 조선은 앞 선 문명국이며 일본은 후진국이라고 개탄한 바 있다.
그런 개탄이 명치유신을 맞아 신분제도를 혁파하면서 고등고시라는 공무원 채용방식으로 귀착했다. 고시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도입한 것이다.
패전 후 민주화된 오늘에도 일본은 공무원 채용을 계속 2원화하고 있다. 상급직의 선발과 임용을 따로 시행하고 있으며 그 후의 인사관리도 따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무원제도는 일본 것을 원형으로 삼아 발전되어 왔다. 고시제도도 그러했다.
고시 출신자를 핵으로 삼는 일종의 직업관료제도는 박정희대통령 말기에 완성되었다.
그 나름의 안정과 질서를 구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로 이 고시중심의 공무원제도는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른바 미국식 공무원 임용방식의 도입이 여러 차례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고시에 의한 공무원 채용방식이 갖가지 폐해를 낳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널리 인재를 등용하자는 고시제도가 오히려 전문인력의 활용을 막는 장벽이 되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그러나 고시제도에는 다른 폐해를 덮고도 남을 장점이 있다. 객관성이 그 것이다. 시험은 객관성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각 부처가 자유롭게 상위직 공무원을 채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아무리 엄정한 기준을 세운다 하더라도 객관성의 시비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안그래도 정실과 비리의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인사풍토에서 재량의 여지를 크게 남기는 공무원 채용방식을 도입한다면 공연한 억측과 시비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정태성언론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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