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옮길 때면 기업가치와 연봉을 먼저 보지만, 막상 새 둥지를 틀면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가 승패의 관건이 된다.
가족보다 더 자주(그리고 오래) 보는 상사. 그들이 바뀜에 따라 인생의 희비가 엇갈리고 평생 말단으로 ‘굴러야’ 된다는 절망감도 잠시,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어느덧 “드디어 내게도 조수가!” 라며 어떻게 잘해주고 분풀이(?)해줄까를 즐겁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입맛에 맞는 부하직원은 버텨낼 수 있는 상사 만나기보다 더 어려우니.
가장 괴로운 타입이 눈치 없는 ‘상전형’. 최근 영화계 워킹우먼 A는 폭발했다. 상사를 설득해 출장에 남자직원 두 명을 데리고 갔는데, 도움을 받기는 커녕, 그들 뒷수습에 진땀 뺐다. 밤새 술 마시고 지각을 하질 않나, 자기들이 손님인 것 마냥 멀뚱히 앉아있질 않나…. 게다가 지각을 초래한 숙취가, 출장의 불문율을 어긴, 호텔 미니바의 무지막지한 이용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 후 말을 잃었다.
성미급한 완벽주의자인 그녀의 특성상, 일일이 조목조목 시키지 않고도 좀 ‘알아서 눈치껏’ 해주기를 바랬던 게 과욕이었을까? 출장 후, 그녀는 당근에서 채찍으로 전략을 바꿨다는 후문이다.
대중매체사에서 일하는 B는 남자보다 여자 부하직원이 더 심하다고 한다. 처음에는 귀엽고 자신의 옛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잘해줬더니 이내 기어 오르고 심지어 자신에 대해 ‘여자로서’ 질투까지 한다며 이를 갈았다. 또한 상사가 아닌 ‘언니’로 대한다는 모욕감. 가뜩이나 여자로서 힘든 것도 많은데 동성 후배에게 조차도 ‘차별대우’당할 줄이야!
닷컴 기업에 다니는 C는 그래도 얼마전 전화 한통에 구원 받았다. 신입시절부터 가르쳤던 여직원과 몇 년을 환상의 팀웍으로 일했는데, 어느덧 머리가 커진 부하직원은 그녀에 대해 반발하기 시작했다.
더 책임감 있는 일을 주면 ‘힘들다’하고, 그래서 좀 편하게 해주면 ‘혼자 일 다 한다’고 항의하니, 매번 부하 눈치를 살펴 일을 줘야 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다른 회사로 옮겼던 그가 풀 죽은 목소리로 “제 밑에 직원이 들어와오니 이제서야 과장님 마음을 이해하겠어요”라며 눈물겨운 전화를 걸어왔다고.
그렇다. 부하직원이 한없이 미울 때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예전에 미워했던 상사들. 행여나 꿈에 나타날까 두렵던 상사였지만 반대로는 “안되면 상사 탓, 잘되면 내 능력 탓”이라고 속 썩이던 나 같은 부하직원 감당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며 그들이 가끔 그리워지는 것이다. (임경선·자유기고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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