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부터 ‘주 5일 근무제(주 40시간제)’라는 단어가 언론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발표 직전 단계까지 갔던 노사정위원회 합의가 노사 양측의 막판 변심으로 무산되더니 ‘단독 입법이라도 하겠다’던 정부까지 소수 여당의 한계를 절감, 말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미국이 1938년 시작한 것을 비롯해 오스트리아(1969년), 스웨덴(1973년), 일본(1994년) 등 세계 각국이 앞 다퉈 시행중이다. 하지만 이르면 올 3월부터 시행될 것을 고대해왔던 국민들은 이제 노사 힘겨루기로 변질된 협상에 짜증마저 느끼고 있다.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새 제도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노사정 3자의 피상적 인식 때문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왜 근로시간을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없이 김대중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떼밀려 협상을 시작하다 보니 서로 필요성보다 내 것을 빼앗기는 것 같은 의심만 깊어졌기 때문이다.
자전거상에서 굴지의 자동차회사를 일궈낸 혼다 소이치로가 1963년 내건 슬로건은 ‘열심히 일하고 잘 놀자’. 일본 후생성이 그 진가를 알아차린 것은 20년도 더 지난 1987년이다. 73년부터 24년간 제조업체의 근로시간과 생산성을 매크로하게 계측한 결과 근로시간 1% 단축시 생산성이 3.7% 향상된 것이다.
미국 유수의 기업들도 뒤지지 않는다. 네슬레가 도입한 ‘금요일 오전 10시 이후 회의 금지’,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이 매주 실시중인 ‘생각하는 날’, 마이크로소프트의 ‘임원 강제휴가’ 등은 ‘시간’을 노동, 자본, 기술, 정보에 이어 제5의 경영요소로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국의 경영자들은 이에 대해 반론한다. “여건이 취약한 우리 중소기업의 사정상 근로시간까지 줄이면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경영학자들은 그런 주장에 회의적이다. “독일 근로자가 출근해서 정상근무에 돌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일본 근로자는 15분, 한국 근로자는 45분…. 한국 근로자는 저녁 7~8시까지 남아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지만 정해진 근무시간에 일하지 않고 밤늦게까지 남아있는 게 진짜 미덕일까?”(오철구 저 ‘경영의 지혜’)
이는 노사가 아웅다웅하는 것과 달리 기업 현장에서 토요휴무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근로자 100명 이상인 전국의 5053개 기업 가운데 이미 497개사(9.8%)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노사 자율로 국제조류에 올라탔다.
한국의 노동단체들은 반론한다. ‘섣불리 주 5일 근무제에 동의해주면 임금이 현재보다 줄어들 우려가 있다”. 지난 85년부터 이미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한독약품의 사례는 노동단체의 지적이 기우임을 보여준다.
노사 자율로 제도를 받아들인 이 회사에는 임금 저하, 생산성 차질은 물론 노사분규도 없다. 근로자들이 스스로를 충전하면서 직원 720명 중 100여명이 20년 이상 근속자일 만큼 내구성이 강해졌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세계가 앞서나가는데도 우리 현실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이다. “지금 노사가 ‘닭싸움’하고 있어요. 먼저 협상을 하자고 하면 지는 것처럼 여기는지, 서로 눈싸움만 하고 있어요.” 노동부 관계자의 한탄이다.
그는 몰랐으면 좋을 이야기까지 전해줬다. “방용석장관의 첫마디가 ‘왜 주 5일 근무제를 하려 하느냐’는 것이었어요. 한참 설명했더니 그제야 ‘그러면 해야지’라고 답하더군요.” 1200만 근로자들의 생활과 산업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지금 한국에서는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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