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드라마를 보면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세탁해 놓은 와이셔츠가 없거나, 집안이 좀 어수선한 것을 본 남편이 "당신은 도대체 집구석에 앉아서 무얼 했길래 이 모양이야" 하면서 부인에게 불만을 터트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대한 부인의 반응 중 하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유기한 것에 대하여 마치 큰 잘못이나 저지른 사람처럼 어쩔 줄 모르며 쩔쩔 맨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나는 대체로 화가 난다. 왜냐하면 살림이란 당연히 부인이 전담하여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것조차 제대로 못해 내어 너무나 죄송해하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공간인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살림, 즉 가사노동은 공기나 햇빛과 같이 당연히 있어야 할 존재로 느껴진다. 그러니 반찬이 맛이 있고, 깨끗한 와이셔츠가 준비되어 있고, 집안이 잘 정돈되어 있을 때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이런 상태가 아닐 때만 눈에 띄고, 불편하고, 잘못한 일이 되는 것이다.
만약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부인(남편이 전담하는 경우는 방송을 탄다)들이 총파업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 최근의 발전노조 파업보다 더 큰 파장이 일어날지 모른다. 식사는 외식으로 해결하고, 빨래는 세탁소에 맡기고, 아이는 놀이방에 맡기고 하면서 며칠은 버틸지 모르지만 과연 그러한 방식의 생활이 얼마나 지속될 것이며, 편안하고 즐거울 것인가. 아마 열흘도 못가서 백기를 들고 남-부(남편 대 부인)간 쟁의협상을 하느라 온나라가 진통을 겪을 것이다.
가사노동이란 지루하고 휴일도 없고, 매일 반복되며, 돈도 받지 않는 일이지만 나날이 가족들을 다시 살려내는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가사노동의 중요성을 좀더 꼼꼼하게 따져보자. 우선 가사노동을 집안식구가 하지 않고 외부의 임금노동자에게 맡길 경우, 우리는 그 사람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 직장에 가서 일을 해서 눈에 보이는 돈을 벌어오는 것만이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사노동도 곧 임금으로 대체될 수 있으며, 공짜가 아닌 것이다.
또한 우리는 시장에서 구입한 재화를 가사노동을 통하여 그 가치를 높이게 된다. 가령 쌀을 사서 그 쌀을 그냥 먹기보다는 정성껏 씻어서 밥솥에 넣어, 알맞게 물을 붓고 가열하여 밥을 지어먹는다. 쌀이라는 재화에 시간과 노력을 투입, 밥이라는 좀더 부가가치가 높은 재화를 생산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시장의 상품과 같이 구체적인 돈으로 환산된 것이 아닐 뿐이다.
가사노동은 먹고, 입고, 피로를 풀게 하고, 공부할 수 있게 힘을 넣어주는 등 가족구성원의 노동력을 재충전해 주기도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사회 모든 분야의 생산활동에 많은 차질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가사노동이 그동안 너무 싸게, 아니 심지어 공짜로 취급되어 왔고, 이와 더불어 이를 전담하는 부인들의 지위도 낮은 신세가 돼왔다. 그래서 전업주부들은 직업란에 자신들의 직업을 전업주부라고 쓰는 것에 대하여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
최근에 여러 학문분야 학자들 사이에서 가사노동을 화폐가치로 산정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얼마 전에 가정학자들이 발표한 가사노동의 화폐가치를 보면 평균 100여만원 정도로 나와 있는데, 가사노동에 포함된 '사랑'이란 가격까지 생각하면 "여성 가사노동 값 너무나 싸요" 하고 외치고 싶다.<李蓮淑고려대교수.가정교육학><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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