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에 온나라가 뜨겁게 달궈져 있는 가운데 장사가 안된다고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이달 들어 책 판매량이 많이 줄고 있다고 한다. 월드컵 영향도 있겠지만 여름이면 책이 더 안 팔린다고 한다.
더운데 무슨 책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진정한 독서의 계절은 여름이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다. 청명한 가을날 실내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것이 과연 보통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일까. 한국의 가을이 좀 아름다운가. 나는 아름다운 가을에 실내에서 책을 읽을 만큼 참을성이 많지 않다. 산책도 하고 싶고 스포츠도 즐기고 싶고 가족들과 주말 나들이도 가고 싶다.
무더운 한여름이야말로 시원한 곳을 찾아 책을 읽기에 제격이다. 올 6월은 월드컵 때문에 어렵겠지만 7월부터라도 독서열기가 한여름 찜통열기를 압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무실 근처 애경백화점내에 대형서점이 문을 열었다. 나는 점심 먹고 그곳에서 책 구경하는 것을 즐긴다. 베스트셀러 코너를 애용하는 편인데 ‘괭이부리말 아이들’ ‘봉순이 언니’ ‘연탄길’ 등은 아주 재미있었다. 베스트셀러 코너는 서점가의 훌륭한 마케팅이다. 특히 나처럼 잡독(雜讀)하는 유형은 베스트셀러만큼은 빼놓지 않고 읽는다.
경영관련 베스트셀러도 좋아한다. 내 경우는 약간 중증인데, 일단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경영서적은 대부분 사들이는 편이다. 구입한 책을 얼마나 읽느냐 하는 것은 다음 문제다. 반은 임직원에게 나눠준다. 유익하게 읽은 경영서적은 해당 필자나 역자를 회사에 초청해 직원들과 함께 토론을 해보기도 했다. 올해 처음 시도한 것이었는데 회사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넘어지려 할 때 일으켜세워준 것은 다름아닌 책이었다. 괴로울 때는 책에서 힘과 용기를 얻었고, 즐거울 때는 책을 통해서 더욱더 즐거워했다.
요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정리하고 있다. 평생 곁에 지니고 싶은 책만 남기고 주위사람들에게 책을 나눠주려고 한다. 분류작업을 시작하면서 내심 몇권이나 내곁에 남겨질까 궁금하다. 성경, 성철스님 글 등 두세권은 가장 먼저 챙겨두고 싶다. 다음으로 데일 카네기, 리처드 칼슨, 나폴레옹 힐 등의 자기 수양서 두세권도 남을 것 같다. 어린왕자, 성채 등 외국소설 약간도 필요하고, 임어당의 글, 삼국지, 명심보감류의 고전 약간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골프와 여행서적 두어권과 경영서적 네댓권도 챙겨야 할 것 같고….
앞으로도 잡독은 계속하겠지만 정말 좋은 책은 평생 곁에 두고 싶다. 세월이 흐르면서 몇몇 책은 자리바꿈을 하겠지만 좋은 책은 읽을수록 감칠맛이 더 나는 법이다. 성철스님의 어느 책에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좋아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좋은 책은 종교도 국경도 남녀노소도 무관한가보다.
내 경험으로는 젊은 직장인들이 경영관련 서적만을 편식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20∼30대에 편중된 독서를 하다 보니 소설이나 시, 수필 등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활력을 주는 것은 경영서적보다 시, 수필, 소설 등이었다.
그렇다고 경영서적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과 얘기를 하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내용의 깊이가 없다 보니 과거의 경영기법 얘기만 되풀이한다. 적어도 새로 시도되고 있는 다양한 경영기법에 대해 경영자들이 정확하게 인지하고는 있어야 한다. 물론 채택하고 안하고는 각자의 몫이다.
이제 월드컵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7월이면 결국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여름이 우리를 맞을 것이다. 국민 모두가 붉은 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이라는 응원열기를 뿜어냈듯이 독서 열기가 한여름 열기를 압도했으면 좋겠다. <안용찬 애경산업 사장>
<파이낸셜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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