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을 넘기면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산으로 바다로, 계곡으로 강으로 피서 인파가 넘쳐나고 있다. 공항도 예외는 아니다. 해외여행객수가 올 여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하듯연일 인천공항 출국장은 북새통이라고 한다.
특정광고 얘기라서 좀 뭐하지만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라는 한광고 카피가 솔깃하고 상큼한 공감을 불러오는 것도 계절 때문이리라.
즐기기로 따지면 휴가철 역시 쾌감의 절정을 맛본 6월 못지 않을 듯싶다.
그래서 일까. 요즘 새롭게 보이는 풍속도 가운데 맨 먼저 다가온 것이휴가 문화의 변화라는 생각이다. 직장 선택의 결정적인 요소로 주 5일 근무제가 떠올랐고 그 결과 매력 있는 직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금융권이새롭게 상위 랭킹에 올랐다고 한다. 대신 아무리 잘나가도 퇴근 시간이흐리멍덩한 제조업체는 그 아래로 축 처지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월드컵 이후 우리 일상에 선진 형태의 생활 패턴이 속속 배어들고있다는 생각이다. 그 신바람의 거대한 에너지 원천인 이른바 ‘W세대’들의 “즐기면서 최선을 다한다”는 담백한 정서가 어느새 사회전반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여름나기도 주목거리다. 국토순례가 그 어느 때보다 인기를 더하고 있다고 한다. 몸에 손에 태극무늬가 어우러진 행군이 산야를 수놓을 거란다. 확인된 우리의 능력과 그 것으로 얻은 자부심 또는 자긍심,이런 것들을 사랑스런 국토에서 다시 쏟아부으며 가슴 뭉클함을 풀려는순수함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대해 우려도 없지는 않다. 포식 후의 공복이란 더 자극적이란 법인가. 월드컵 이후 사회 전반에 허탈감 같기도 한 일종의 공허가 확산되는 듯한 낌새가 눈에 잡힌다. 주 5일 근무를 ‘일 덜하거나 또는 더 놀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여름 휴가를 맞아서는 곤란하다.
며칠 전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과 몇몇이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88올림픽 얘기가 나왔고 당시 국운상승 국면을 살리지 못하고 되레 곤두박질쳤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사실 그랬다. 수출해야 먹고 산다는 생각은 안중에 없이 쏟아진 금메달이 무슨‘부(富)의 환영(幻影)’인냥 시중돈은 꾸역꾸역 주식시장으로만 몰렸었다. 그 결과 88년 28%가 넘던 수출증가율은 이듬해 4분의1 수준으로 뚝떨어졌고.
즐거운 휴가를 떠나려는데 맛떨어지게 무슨 심각한 경제 얘기냐 핀잔이겠지만 분명히 돌아가는 낌새가 좋지 않다. 상반기에 6%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내수 덕분이다. 물론 경기가 상승기조임에는 분명하다.
하반기 수출도 어느 정도는 기대된다. 그러나 신뢰를 잃은 미국시장의 뒷심 부족이 심각한 데다 달러화는 맥 못 추고, 덩달아 우리 주가도 게걸음만 못한 형국이다. 게다가 물가도 심상찮다. 앞으로 8·8보선과 대선 정국에서의 오염도나 끊이질 않는 노사분규 모두 불안의 온상이긴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휴가는 샘물 같은 것. 휴가의 미학 앞에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영세업체건 자영업이건 예외일 수 없다. 일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휴가를 떠나고 돌아온 뒤에 확실하게 일한다는 각오 하나면 된다.
휴가와 관련된 경영을 얘기하자면 기자는 서슴지 않고 고 최종현 SK 회장을 꼽는다. 숱한 경영 일화를 남긴 그 분이지만 ‘확실하게 쉬어라’라는 휴가 경영철학을 중시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흔치 않다. 행선지를 남기지 않고 떠나는 그의 ‘휴식 경영’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쉬지 않는 사장이 있으면불러다 호되게 나무란다. 수많은 사람들이 눈치근무를 해서는 안된다는게 그의 지론이었다면 지론이었다.
노사 모두 홀가분하게 ‘휴가도 경영’이라는 생각으로 기분 좋게 놀되또 열심히 일한다는 각오를 다질 때다.
<내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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