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장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100g 안팎이 고작이다. 금색 딱지나 하나 붙어 있다면 큰 호사로,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졸업장과 별다를 게 없다. 그러나 취업 시장에서 대학 졸업장의 무게는 천차만별이다. 간판과 소재지가 가장 큰 변수다.
서울 소재 소위 ‘명문대’를 1점으로 할 때, 서울 소재 ‘유명대’는 0.9, 서울 소재 ‘기타대’와 지방 국립대는 0.8. 수도권 소재 대학과 지방 유명대 0.7, 기타 0.6이다. 한국교육개발원 홍영란 연구위원이 최근 ‘기업의 직원 채용과 승진에 학벌이 미치는 영향’ 연구에서 밝힌 대학 차별 점수 기준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지방 대학 출신은 일단 허리가 꺾인 채 불공정 경쟁을 시작한다. 이러니 유치원에서부터 명문대 진학 목표로 과외전선이 불붙는다.
휴대용 녹음기 ‘워크맨’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전자제품 취향을 ‘개인지향’으로 바꿔놓은 소니사는 90년대 초 입사원서에서 학력 기재란을 지웠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희한한 물건을 개발하려면 주류적(主流的) 사고의 틀에 갇힌 명문대 출신 수재만으로는 곤란하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그러나 그 소니도 한국에선 다르다. 입사지원서에 학력은 물론, 학교 소재지까지 밝히도록 했다. ‘한국 사회의 문화를 감안’해서란다.
한국의 취업지망생이 다닐지 안(못) 다닐지도 모르는 회사에 밝혀야 하는 개인 사항은 학력뿐이 아니다. 학비를 누가 댔는지, 가족의 재산과 월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자가(自家)인지 월세인지까지 입사지원서에 쓰는 게 ‘한국 사회의 취업 문화’다. 엊그제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내 주요기업들이 이 같은 차별 요소를 입사지원서 항목에서 삭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LG전자와 SK건설, 동양매직, 한국토지개발공사는 출신학교 이름도 쓰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인적 자원 채용에 학력을 묻지 않을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다른 방법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몇 년 전 한국의 대기업이 미국 현지법인 채용 면접에서 ‘결혼했느냐’ ‘젊어 보인다’는 말을 했다가 성차별로 고소당했다. 성·인종·연령 차별을 엄격히 금하고 있는 현지 법규에 대한 무지, 그리고 극히 개인적인 것까지 입사지원서에 밝히게 되어 있는 한국적 습성이 빚어낸 사고다. 차제에, 성차별·지역차별 유발 요소인 사진 붙이기와 본적 쓰기 항목도 한번 도마에 올려놓아 볼 일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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