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화와 세계화가 이미 돌이길 수 없는 선택이 된 한국경제를 망망 대해의 작은 배에 비유하더라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대해에서 작은 배는 순풍이 불때는 빠르고 쾌적하게 항해할 수 있지만 크고 작은 풍랑에 노출되어 많은 위험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상황전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간 크게 안이하였다.
우리들 대부분은 한국경제호라는 배는 아직도 방파제 시설이 여기저기 있는 연안 바다를 항해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항해조건에 대비하여 배를 구조적으로 수리하고 개선시키는 작업을 뒤로 미루고 옛날처럼 경영하고 일하고 소비하였다.
사실 망망대해에서도 좋은 날씨가 계속되는 것과 같이 그간의 대외적 여건은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전개되었던 저물가, 저금리, 저유가 등이 우리에게 크게 도움을 주었던 여건이었다. 그리고 IMF사태 이후 미국과 IMF의 우호적인 경제지원도 순풍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항해에서 좋은 날씨가 계속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경제의 우호적인 여건도 계속될 수 없다. 최근 국제유가가 급격하게 오르고 약속했던 포드가 대우차인수를 포기하고 또한 우리나라 수출의 주력품목인 반도체의 국제가격이 크게 하락하는 등 악재가 겹쳐서 나타남에 따라 우리경제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그간 미루어 왔던 경제의 부실부문 정리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만시지탄이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우리경제를 취약하게 만든 핵심적인 요인은 금융과 기업의 부실이다. 그 중에 보다 근원적인 요인은 기업부실이다. 기업부실의 정리 없이 금융부실의 정리가 있을 수 없다. 기업부실의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부실 정리의 노력은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이다.
그간 금융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1단계에 투입된 공적자금이 110조 여원에 이르고 다시 이번의 2단계에서 40조에 달하는 공적자금이 새로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발표되고 있다.
이와 같은 거액의 국민부담은 이제 한계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무거운 국민부담을 염두해 두고 정부나 해당기업은 단호한 각오를 가지고 기업구조조정을 확실히 실행해야 한다. 특히 구조조정이 요청되는 기업은 폭풍이 시작되고 있는 대해(大海)에서 항해하는 선원의 태세로 임해야 한다.
기업은 기업이 제일 잘 안다. 기업 스스로가 냉혹한 여건변화와 자체 경쟁력을 냉정히 평가하여 구조조정하여 회생하든지 퇴출하여야 한다.
개별경제주체의 운명은 기본적으로 자결의 원칙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이런 자결의 원칙을 대전제로 하여 채권금융기관과 감독기관은 구조조정이 원활히 될 수 있도록 투명하고 일관성 있는 기존에 따라 지원해야 한다.
이번에 금융감독원이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한 부실기업 판정의 가이드라인은 상당히 구체적 내용을 가지고 있어 나름대로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이드 라인이 흔들림 없이 일관적으로 실행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물론 이 가이드라인은 재벌계열 기업이나 대기업에도 일률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한편 채권금융기관은 부실기업가능성에 대한 판정, 회생기업에 대한 지원 등을 신속하고 단호하게 진행해야 한다. 기업들이 살생부에 회자되면 그 시점부터 그 기업들은 건실정도와 관계없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동시에 금융시장의 불안은 더욱 커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리경제의 체계적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기관의 개입은 신속하면서도 단기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채권금융기관은 경제원칙에만 충실하여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특히 기업에 대한 채권금융기관의 결정을 내부전문가 뿐만 아니라 외부전문가까지 포함한 중립적 위원회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구상은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정치권은 부실기업의 생명연장을 결코 청탁해서는 안된다. 청탁의 시작은 그간의 구조조정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국민경제에 엄청난 비용을 초래한다.
또한 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은 노동부문, 정치부문, 공공부문 등과 같은 다른 부문의 개혁과 병행해서 이루어질 때 그 효과가 지속될 수 있다.
이제는 서로 다른 부문의 개혁이 먼저 되기를 바라고 미적거릴 수 있 는 여유가 없다.
기업 부실이 확대되어 국가 위기로까지 연결되었고, 아직도 그 기업 부실이 엄청난 국가적 부담으로 되고 있는 사실의 1차적 배경은 우리경제가 부실의 초기 단계에서 싹을 자르지 못한데 있다. 그 싹을 자르는 일선 주체는 채권금융기관의 대출심사라고 할 수 있다. 그간 대출심사는 많은 경우 유명무실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부실의 싹이 자라 국가위험으로 까지 번지지 않도록 초기에 국지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적 과제가 일선 금융기관의 대출심사 기능의 강화이다. 정책당국과 금융기관은 이 기능을 가능한 빨리 정상 화 시키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슈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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