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개인 신용공급을 통한 경기급락의 방지는 유효한정책수단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미 달러화 약세가 본격화되고 세계경제회복이 지연되면서 이제 우리는 그 동안 주효했던 정책 선택의 후유증을치르게 됐다. 자금이 편중돼서 나타난 신용불량자 사태나 부동산 버블 같은 혼란은 아직 우리 경제가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이 많다.
더욱이 앞으로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칫 미래의 고통을 증폭시키는 단기대응에 매달리기 쉽다. 정작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은 어떤 묘책보다도 경제의 작동을 원활케 하는 기본적인 토대를다져가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의 어려움은 이러한 노력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다. 외부 파고가 높아지는 가운데 미래를 위한 구조조정보다는 당장의 시장안정에 치중해야 하므로 선택의 여지는 넓지 않다.
일단 최근의 극심한 경기 위축은 그 동안 경기를 지지해왔던 소비시장이 신용흐름 난조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근저에는 우리경쟁력을 왜곡하고 잠식한 중국의 환율체제 운용상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한때 중국 시장은 우리 경제의 디딤목으로 각광받았으나 앞으로 언제든 우리 경제의 위협요인으로 부각될 수 있다. 거대한 세력으로 부상 중인 경제가 환율조정을 거부하는 현 상황은 실로 세계경제 전망마저어둡게 한다.
중국 경제가 자신의 성장을 위해 환율안정을 고집한다면 그로 파생되는조정부담은 결국 기축통화의 변화로 내부적 조정부담이 일방적으로 커질수밖에 없다. 이는 소개방국가의 비용으로 귀착되게 마련이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역내 경제체제의 구조적 모순은 이제 세계 경제에서 보다 큰 역할이 기대되는 중국의 책임회피로 심화되고 있다. 중국이 만약 절상을 거부하고 현 체제를 고수한다면 미 달러화 약세 압력은 더욱 커질것이고, 이는 결국 막대한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역내 금융안정에 심각한 위협요인으로 실현될 뿐이다.
이렇게 외부적으로 쉽지 않은 변화가 우리를 조여오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경제체제는 경쟁력을 결정하는 금융과 노동시장의 문제로 더욱 심각해질 소지가 크다. 실증분석 결과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금융시장의 원활치 못한 작동으로 우리 성장의 결실이 20~30%까지 낭비될 수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당장 여건이 어려워 고칠 곳을 고치지 못하는 대가로 우리의 호주머니는 점차 얇아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동맥경화증은 결코유럽에서만 경험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우리의 당면 현안이다. 변화의진통이 커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당장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 듯하지만결코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물론 구조적 체질개선 없이 다양한형태의 양극화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책임소재를 가리는 데 골몰하기 쉽다. 반대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변화추세를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면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개방적 의사결정체제가 중요하다. 과거의 투자실적이 미래의 결과를 보장할 수 없듯 과거 경제체제의효율성이 미래의 효율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변화는 경제체제 자체의 구조조정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지배구조상의 문제부터 시장작동에 관련된 인프라 구축까지 다양한 노력을 포함한다.
더욱이 중국과 같이 자체적 거대시장이 없는 우리로선 끊임없는 변화는생존의 기본요건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핵심으로 부각돼야 할 요소시장은 여러 형태로 그 기능이 제약되고 있다. 다양한 의견이 조율되는장으로서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분위기와 소신적 판단의 관철은 상호모순적이고 상충될 수밖에 없다. 환율문제도 한 예에 불과하다.
대국들의 조정 지연은 개도국의 주름살로 나타날 뿐이다. 역내 협력문제는 바로 자신이 조정하기 어려운 점을 이웃에게 넘기려는 대국 위주의발상에서 벗어나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이러한 차원의 노력이 선행되지않는 한 미래는 밝을 수 없다.
역내 차원에서 시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공동의이익을 나누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상황이다. 현재의 경기침체가 수반하는 비자발적 구조조정은 창조적 파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시장변화에 밀착해 스스로 유연한 여건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정책노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환율체제는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의 상충관계를 엮어내는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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