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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의 학생 상담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한 적이 있다. 학생들이 상담을 요청할 경우에 상담신청서에 ‘상담받고 싶은 주요 문제는?’이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우리는 쉽게 ‘이성문제’, ‘학업문제’, ‘성적문제’ 등이 아마도 가장 많은 주요 호소문제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렇게 예상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차근차근히 서류들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가장 많은 주요호소 문제가 이성문제, 학업문제, 성적문제도 아닌 ‘나 자신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라는 문구가 가장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실제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겉으로는 적성검사를 받고 싶다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인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들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과연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주는가? 보통 우리가 자아정체감이라고 하는 것은 청소년기에 형성되는 심리적 발달과업이라고 생각한다. 즉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며, 어떤 것을 잘하고, 그리고 어떤 부족함이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갈등하여 그 결과로 나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아정체감’의 올바른 형성은 이후 성인기에 안정적인 대인관계와 사회에 기여하는 생산성을 발휘하는 존재로서의 기본적인 토대를 이루게 된다. 이 때문에 에릭 에릭슨이라는 분석심리학자는 ‘심리적 유예기간’이라는 것을 두어 청소년기에 자신이 속했던 곳을 떠나서 여러 곳을 다니고 여러가지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제안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학생들은 불행히도 청소년기 시절 자신에 대한 진정하고 고민과 성찰을 하기보다는 자율학습에 참가하고 학원을 몇 개씩 다니면서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로 신입생 실태조사 등에서 ‘자신의 과에 대해서 잘 알고 들어왔다’라는 항목에 ‘그렇다’라고 응답하는 비율이 30%가 되지 않으며, ‘만약 재수를 하더라도 현재의 과나 전공을 다시 선택할 것이다’라는 문항에 ‘그렇다’라고 응답하는 비율이 40% 정도 밖에 안되는 불행한 현실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행한 현상이 단지 대학생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때면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더욱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직장생활 2-3년차 정도의 사람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현재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직장과 직업이 자신이 이전에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몸은 회사에 있지만 마음을 이미 다른 곳을 찾아 방황하는 경우들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청년실업’, ‘삼팔선’, ‘사오정’, 그리고 ‘오륙도’ 등 우리를 둘러싼 불안정감과 위기의식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기초를 세우기도 전에 세상의 유행과 세태에 나 자신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나 자신의 모습, 나의 특징과 장단점,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원칙들, 나의 한계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들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어린 시절 이미 했어야 하는 것을 아직 못하고 있다면 바로 지금이 그것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나의 미래와 가치있는 삶을 위한 “경력개발”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인크루트 기고] 노주선 한국인성컨설팅 대표 noh@personali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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