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끝없는 맞대결
우리나라 노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 타협없는 평행선 대립을 꼽을 수 있다. 지난 ’80년 후반 이후 흔히 ‘대립과 갈등’으로 상징되는 적대적 노사관계가 형성되었다. ’87년 6.29선언 이후 활성화되기 시작한 노동운동을 흔히 ‘노동의 대폭발’로 비유하듯 군사정권의 권위와 성장위주의 개발로 짓눌러왔던 근로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왔던 전반적인 노사관계도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고도성장기에 억제되어온 노동운동의 물결이 봇물 터지듯 산업현장을 덮치면서 업종 또는 기업규모를 가릴 것 없이 노사갈등의 홍역을 앓게 된 것이다. 근로자 또는 사용자 아니면 정부 어느 한쪽만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이런 대립위주의 노사관계 관행은 OECD국가 등을 포함, 구미선진국 등 전세계 48개국을 대상으로한 노사관계 순위에서 ‘골찌’를 기록할 정도로 후진성을 대외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최근 몇년간 노사분규에서 오는 손실은 늘어만가고, 노사관계의 국제경쟁력순위나 근로자 동기유발의 국제경쟁력순위는 스위스 IMD에서 조사한 48개국중에서 꼴찌수준에 머물고 있다. 종업원 훈련 중요성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은 조사대상 46개국중 아시아의 경쟁국인 싱가포르(3위), 일본(4위), 대만(11위), 홍콩(27위)에도 못 미치는 29위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분배위주의 투쟁, 권위주의적 통제, 집단이기의 추구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세계적 전문기관들의 우리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냉혹한 것이라고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최근의 효성 울산공장 파업 사태를 보면 이런 모습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노사협상은 결국 결렬에 결렬을 거듭하다가 공권력 투입으로 마무리됐다. 공권력이라는 외부의 힘을 빌려 상황을 종료시킨 만큼 노사간 앙금은 한동안 남아 있고 대화를 통한 노사협력이나 회사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는게 노동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노사협상 과정을 돌이켜볼 때 이같은 결과는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 회사는 노사관계에 관한 한 "14년간 무분규"라는 전통을 지켜온 모범적 사업장이었지만 파업 첫날이니 만큼 좀 더 인내심을 발휘해 본다는 자세에서 접점을 찾을 노력을 기울일 법도 하건만 곧바로 경찰 투입 요청을 시사했다. 조정래 사장은 지난 5월 25일 부분 파업이 시작되면서 "꼬박꼬박 세금을 낸 결과가 겨우 이것이냐"며 경찰에 불만을 터뜨릴 정도였다.
양보할 생각이 없기는 노조측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울산지방법원에서 쟁의행위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이날부터 벌이는 파업은 일단 불법으로 간주되는데도 노조측은 오히려 사흘 뒤 전면파업으로 치달았다. 게다가 강성 노조의 선명성을 드러낼 목적이었는지 회사측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기는 커녕 "구조조정 철폐"를 외치며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이달부터 본격화될 임·단협과 구조조정을 앞둔 경제계와 노동계의 대결 양상이 효성 울산공장의 노사분규를 빌미로 민주노총과 재계간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노사자율 협상 결과에 따라서는 최선 또는 차선의 과실이라도 얻을 수 있었겠지만 민주노총이나 재계 한쪽으로 힘의 균형이 쏠리는 것을 막기위해 그 협상권조차 제3자에게 헌납했다. 그 결과 노사 모두 상처와 갈등을 안게된 것은 물론 효성사태가 노동계 전체로 번질 대규모 파업 사태의 빌미만 제공했다.
정부는 그동안 노사문제는 자율해결토록 한다는 원칙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그 기조는 무너졌고 따라서 대화보다는 경찰력에 의존하고자 하는 사업장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게 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노조는 계속적인 ‘강성화’ 경향을 반복하게 된다. 자동차업계의 노사관계처럼 파업과 생산중단의 장기화, 그리고 공권력 투입이라는 극한대결이 거의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어 왔다.
자동차산업의 노사관계가 대체로 협력적이라기 보다는 대립적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은 과거 선진 자동차업계의 경험에서도 대체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우 기업 내외적인 여건면에서 매끄러운 노사관계가 구축되기 어려운 요소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근로자측에서는 자동차가 우리경제를 떠받쳐 온 주력업종의 하나라는 점에서 임금을 비롯한 근로조건면에서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동차부문 노조가 대체로 진보적 성향을 갖게 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해 산업의 역사가 일천한 가운데 기술력 및 자금력이 뒤지는 상황에서 세계적인 자동차업체들과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하는 국내 자동차업체들로서는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자연히 대립과 충돌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의 이같은 노사관계 및 관행이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과거의 틀을 깨고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신노사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맡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가 개입한 노사관계는 기업체가 얻는 것 보다는 잃는게 더 많았다는 뼈저린 교훈을 우린 이전의 노사분규에서 수차례 경험해왔다.
경제불안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모든 사태를 해결하는 후진국형 노사관계는 이제 지양돼야 한다. 정부가 화해와 협력의 신노사관계 노선을 흔들림없이 견지하지 않고선 노사 갈등은 해결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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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영 온라인 미디어 사업부 이사rose@incrui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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