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화염병'을 다시 불렀나”
사라져야할 구시대 산물이지만 노동계의 시위에 화염병이 등장하면서 평화적인 시위문화를 해친다고 각계에서 ‘질타’와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미국의 CNN뉴스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앞에서 경찰 버스가 불타는 장면을 세계에 중계했다. ‘해고된 대우차 노조원들이 구조조정에 반발, 화염병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미국과 유럽,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한국에 화염병이 다시 등장했다’는 서울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외국 언론의 보도는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엄청난 상처를 안겨준다. 화염병 시위와 최루탄 사용량의 증감은, 우리나라의 신인도와 외자 유치에 거의 정확히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각 언론매체에서는 `화염병 시위로 인한 국가신인도 하락과 외국투자자들의 우려'를 내세워 전면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근식 행자부장관도 “CNN이 화염병 시위 장면을 보도, 우리나라의 국가신인도가 떨어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기업 등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도심에 국내 상업용 빌딩을 매입한 한 싱가포르 회사가 협상 초기부터 `한국의 노사문화·시위문화는 외국인들에게 너무 낯설다'며 망설이고 있을 정도다.
외국 투자뿐만이 아니다.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앞세우고 도로를 점거하는 과격시위로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 역시 엄청나다. 시위 때마다 막히는 시내교통비용을 금전으로 환산하면 작년동안 서울시가 동숭동 대학로를 토요일 오후 6시간(낮 12시~오후 6시) 동안 전면통제 때 교통혼잡비용이 3억6000만~4억4000만원에 이른다는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교통 전문가들은 지난 5월 31일 ‘민중대회’처럼 토요일 오후 도심에서 모든 차로를 가로막는 시위에서 발생하는 혼잡비용은 대학로 교통통제를 몇배 상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기에다 일반 시민들이 치러야 하는 ‘짜증지수’까지 더한다면 우리 사회는 ‘과격시위’에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다.
정부와 경찰은 이에 따라 연일 화염병 시위 근절대책을 내놓고 있고, 언론에서는 외국투자자들이 떠나간다며 아우성이다.
정부도 지난 5월 이한동 총리 주재로 재경·교육·법무·행자·노동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화염병 사용 등 폭력시위에 대한 근절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 내용은 △화염병 사용행위에 대한 법정형을 현행 5년 이하에서 3년 이상으로 강화하고 △집회신고 때 평화적 집회를 보장하는 각서제출을 의무화하며 △화염병 시위가 자주 일 어나는 대학에 대해 정부의 행정·재정적 지원을 차별화한다는 것이다. 또 △해당 대학에 화염병 시위를 이유로 형사처벌받은 학생들의 명단을 통보하고 △공직채용 제한과 더불어 민간 분야에서도 기업체 신규채용 때 자발적으로 화염병 사용전력이 채용 여부에 감안되는 사회풍토를 조성토록 노력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 정부 들어 3년 동안 단 16차례, 그것도 우발적으로 발생했던 화염병 시위가 대우차 사태 이후 지속적이고 계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화염병이 사라져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화염병이 왜 다시 나타났는지와 최근의 화염병 근절대책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원인과 결과를 분석해 보는 등 검증 절차에 대해서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화염병 시위 근절대책은 대우자동차 노동자 정리해고 이후 한달이상 화염병 시위가 계속되자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화염병을 던지는 사람들조차 좋아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실업과 고용불안 등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분노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이같은 대책으로는 화염병이 없어질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화염병 시위가 다시 등장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따져볼 때다. 이전에도 수많은 대책이 나왔지만 화염병 시위를 근절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문민정부 초기, 그리고 국민의 정부 초기에는 화염병 시위가 잠잠해졌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과 대안을 내놓으면 폭력시위는 자연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현재의 상황을 대결국면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불안해하고 있는 국민들을 안정시킬 수 있는 실업 문제를 비롯한 민생현안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내 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것이 화염병을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방법이다.
“과격투쟁 해외투자 걸림돌 우려”
오래 전부터 외국 투자자들은 ‘과격 시위’를 한국에 대한 투자기피 이유로 꼽아왔다.
스웨덴계 포장재 제조회사 T사는 최근 일본에 있던 생산시설의 한국 이전을 추진하다가 계획을 백지화할 뻔했다. 설비 규모만 수천만달러에 달하는 큰 사업이었지만, 노조측의 무리한 요구와 시위가 계속되자 스웨덴 본사가 재검토에 들어간 것이다.
일본 기업인들은 한국의 노조가 대단히 비타협적이고 노동관계 법규 또한 이해하기 어려워 한국에서는 기업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한다.
지난 90년에 있었던 스와니사 사건(마산 수출자유지역 입주업체인 일본 스와니사의 한국 근로자들이 일본에서 농성했던 사건)과 관련, 지난해 11월 민주노총의 대학로 집회를 떠올리며 대한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실례로 지난해말 일본의 한 기업은 국내에 70억달러의 부품소재 산업에 투자하기 위해 1억달러 계약을 했지만 더이상 진전이 되지 않고 있다. 이들이 한국 투자를 최종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로 꼽는 것이, 이제는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어처럼 된 ‘전투적인(Militant) 노조와 화염병 시위’다. 70억달러 공장이 들어서면 5000명의 고용인원을 창출할 수 있는데도 그런 기회를 스스로 쫓아내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무역진흥공사 관계자는 “금년들어 노동현장에서 과격시위가 급증하자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는 외국계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도심에 국내 상업용 빌딩을 매입한 한 싱가포르 회사도 협상 초기부터 “한국의 노사문화·시위문화는 외국인들에게 너무 낯설다”며 망설이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 주재하는 한 외국 상공회의소의 관계자는 “한국이 IMF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회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 투자를 결심한 외국 기업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현실은 외국인 투자가들은 자선사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익을 얻기 위해 투자한다는 것이고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까지 나서 경쟁적인 외국인 투자자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소홀히 할 때 그들은 더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나라에 투자하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건전한 노사문화의 정착일 것이다. 근로자 없는 회사가 없듯이 회사 없는 근로자는 있을 수 없다. 회사를 살리는 토대 위에서 노사가 함께 이해하고 신뢰하는 관계가 돼야 한다. 대화와 양보를 통한 타결방식이야 말로 노사는 물론 국민이 함께 사는 '윈ㆍ윈 전략'이다.
이제 우리 모두의 생각과 틀을 과감히 바꿔 나가야 할 때이다. 비능률과 불합리의 근원이 되고 있는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구조는 물론 대립적 이기적인 노사문화 그리고 폐쇄적인 국수적인 우리의 사고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우리경제의 선진화는 공염불일 뿐이다.
강명수 인크루트 경영지원팀 이사 kmyss@incrui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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