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근무할 때 임원 방에 들어가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결재서류들을 쉽게 발견하곤 했다. 임원이 막중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는 임원들의 의사결정 능력이나 속도가 떨어짐을 반증하는 것으로써, 결국 속도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해사(害社)행위에 다름 아니다.
벤처기업은 상대적으로 의사결정이 빠르다. 우리 회사(휴넷)는 설립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단 한번도 결재를 해본 적이 없다. 당연히 우리 회사에는 품의라는 제도가 없다.
나는 경영을 "의사결정의 종합예술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최고경영자의 책무 중 의사결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최고경영자의 매일 매일, 매순간 매순간은 바로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대안들 중에서 골라내는 능력, 그리고 거기에 얼마나 리소스(자원)를 잘 배분해서 목적하는 바를 이뤄 내느냐 하는 실력, 즉 어떤 일을 해내는 데 필요한 대안을 여러모로 검토해 실행방안을 정하는 일"이 바로 의사결정이다. 기업을 경영(leading)한다는 것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통해 조직 안팎의 경영자원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의사결정이야 말로 경영활동의 본질과도 같다“ (곽해선의 쉽게 배우는 경영학)
최적의 합리적 경영의사결정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 최고경영자는 우선 의사결정의 속도와 정확성이 기업경쟁력의 핵심 요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자신과 회사의 의사결정 능력을 키우는데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감'에 의한 의사결정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로빈스 교수에 따르면 합리적 경영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다음의 8단계를 따라야 한다. 1. 문제를 정의한다. 2. 의사결정 기준 요소를 찾는다. 3. 기준별 중요도를 평가한다. 4. 대안들을 만들어낸다. 5. 각 대안을 분석한다. 6. 1개의 대안을 고른다. 7. 실행한다. 8. 의사결정의 유효성을 평가한다.
경험에 의하면 의사결정 관련한 4가지 핵심사항은 다음과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의 대상을 잘 고르는 것이다. 내가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현재 시점에서 무엇에 대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경영자가 의외로 많다.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핵심 Issue Finding)이야말로 최고경영자의 핵심적인 활동이다.
최고경영자가 의사결정해야 할 사항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 어떤 기술을 도입할 것인가? 어떤 시장에 진출 할 것인가? 전략적 제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자금을 언제 들여올 것인가? M&A를 할 것인가? 회사의 가치사슬은 어떻게 가져 갈 것인가? 종업원의 동기 부여를 위해서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 이런 모든 것들이 바로 최고경영자가 의사결정해야 할 부분이다.
매일 부딪치는 수 천 가지의 의사결정 대상 중에 지금 당장 많은 신경을 써서 의사 결정해야 할 주제가 뭔지를 고르는 것이 최고경영자의 핵심 활동이 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의사결정권자가 어떤 부분에 의사결정 노력을 집중하느냐 하는 것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술 개발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마케팅에 관한 의사결정으로 허송세월 한다든지, 마케팅에 관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시점에 자본조달에 매달려 있는 등 시의성을 놓치는 일들이 실제로 많이 발생한다.
또 다른 예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 부분을 놓치고 매일 매일의 회사 내부 운영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기업이 있다면, 최고경영자가 의사결정 대상을 너무 좁게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만큼 성장 자체가 제한을 받게 될 수도 있다.
경영 의사결정과 관련한 두 번째 핵심문제는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내는 능력에 관한 것이다. 각각의 의사결정에 어떤 대안들이 존재하는지, 예를 들면, 기술확보에는 자체 기술개발, 기술 구매, 전략적 기술 제휴등의 여러 가지 대안들이 있다. 각각의 의사결정 과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대안들을 찾아낼 수 있어야 비로소 최적의 의사결정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경험과 식견, 그리고 창의성이 있어야 함은 기본이다.
세 번째는 대안들 중에서 최적안을 찾아내는 능력에 관한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하다는 가정하에' 최적안을 찾는 방법을 주로 활용한다. 그러나 실제 경영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일정한 경우는 전혀 없다.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각각의 상황 변화에 따라 최적해도 계속해서 달라진다. 회사가 처한 상황에 따라 최적 해는 달라질 것이고, 오늘의 최적이 내일은 최적이 아닐 수가 있다. 또한 종업원의 능력과 기업 문화에 따라 각각 또 답이 달라질 것이다.
신속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론들에 익숙해 져야 하며, 나름대로 의사결정 모델을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휴리스틱 방식이나 최적 생산계획 수립방법등 계량적 경영의사결정 방법론에 익숙해야 하며, 의사결정간 Trade-off 관계를 제대로 파악한다든지, 관련된 재무 정보를 찾아서 비교하는 능력이라든지, 미래의 의사결정과 관련이 없는 매몰원가(Sunk Cost)를 찾아낸다든지, 경우에 따라 확률적 기법을 사용한다든지 하는 계량적 의사결정 방법들을 터득해야 한다. 아울러 최고경영자의 통찰력과 경험에서 우러나는 지혜 또한 필요하다.
결국 경영자가 의사결정 기법들에 대해서 얼마나 익숙한가? 얼마나 경영관련 지식과 경험을 풍부히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의사결정의 질이 달라 질 것이고, 그러한 의사결정의 질에 따라 당연히 회사의 성과도 달라지게 되므로 경영자들은 의사결정 능력배양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누가 의사결정 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 회사에서 수많은 의사결정을 사장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형화되고, 구조화된 문제는 일선 담당자들이 매뉴얼에 의해 처리토록 하고, 또한 고객과의 접점에 서 있는 현장 사원들이 바로 의사결정 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 주어야 한다. 반면 회사 전체의 사업방향등에 관한 내용등 크고 비정기적인 것들은 최고 의사결정자가 직접 의사결정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의사결정 업무 분장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임파워먼트와 더불어 조직원들의 의사결정능력을 키워주는 교육과 문화, 그리고 시스템과 관행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최고 경영자로서 합리적이고 빠른, 그리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조용히 반성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만약 사장님께서 경영이론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곽해선의 ‘쉽게 배우는 경영학’을, 그리고 경영에 대한 기초지식이 확실하다면 윤석철 교수의 ‘경영학적 사고의 틀’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휴넷 대표이사 조영탁 (ytcho@hune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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