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데이터센터(IDC) 회사인 아이아시아웍스 성병기(40) 사장은 어찌보면 그다지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오고 남들처럼 회사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는 직장생활 10년 만에 외국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가 든든한 ‘배경’이 있거나 연줄이 있었던 건 아니다. 외국의 유명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딴 것도 아니다. 되레 그는 영어를 잘 못한다. 그런데도 외국계 기업의 CEO로 낙점됐다.
1단계: 숨은 끼를 찾아라
군대생활을 하면서 성격과 태도가 바뀌는 남자들이 있다. 성 사장이 바로 그랬다. 그는 83년에 군에 입대했다. 분위기가 살벌할 때였다고 한다. 맨처음 100km 행군을 할 때 그는 군대란 고통 그 자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나약하게만 살아왔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군대는 계급에 따라 권한이 주어지는 조직이잖아요.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제대로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병영이 잘 돌아갈 수가 없죠.”
그는 군생활을 통해 자신의 내성적 성격을 적극적 성격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때 처음으로 남들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조직의 리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제대한 뒤 복학할 때 그는 이미 이전의 성병기가 아니었다. 적극적 생활태도로 곧바로 과대표로 뽑혔다.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몰랐는데, 나한테 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오죽하면 대학축제 때 그가 사회를 보는 모습을 보고 동료 학생들이 “밤무대 체질”이라고 불렀겠는가. 성 사장 스스로도 자신의 바뀐 모습에 감탄하곤 했다.
그의 뛰어난 임기응변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대학시절 축제기간 중 학과에서 파전을 만들어 팔았다. 파전이 너무 잘 팔리다 보니 ‘파’가 다 떨어졌다. 이때 그가 낸 아이디어는 운동장 잔디를 뽑아다가 그것을 부추처럼 넣어 파전을 만들어 팔자는 거였다. 부추전을 가장해 ‘잔디전’을 만들어 판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잔디전을 사갔던 한 학생이 이상한 게 있다며 다시 들고온 것이다. 거기엔 클로버가 들어 있었다. 성 사장은 재빨리 상황을 무마했다. “당첨되셨군요. 네잎클로버를 찾는 분에게는 부추전을 두장 더 드립니다.”
2단계: 가고 싶은 회사를 정하라
성병기 사장은 한양대 전자통신공학과를 졸업했다. 공대여서인지 졸업을 하기도 전에 한 대기업에서 인턴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인턴생활을 통해 대기업의 기업문화를 체험했다고 한다.
“직원들의 자율권이 너무 없다고 느꼈어요. 지나치게 관료적이었지요.” 그는 이때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기로 작정한다. 대신 당시에 괜찮은 회사로 이름이 나 있던, 쌍용그룹 전산화 담당 회사인 쌍용컴퓨터에 들어갔다.
쌍용컴퓨터에서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실제 그가 마음에 두고 있던 회사는 포항제철이었다. 90년 4월 드디어 포항제철에서 정보통신회사인 포스데이터를 만들어 신입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다. 그는 미련없이 이 회사에 지원했다. 쌍용컴퓨터에서 보낸 약 10개월간의 경력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다시 신입사원으로 원서를 냈다.
3단계: 입사 후에는 적극적으로 일하라
성 사장은 먼저 이력서를 정성들여 작성했다. 자기소개는 경력사항별로 자세히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입사를 하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도 써 넣었다. 면접을 보는 동안 자신이 일하게 될 회사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둘러보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회사 분위기, 첫 느낌, 이런 것들을 나름대로 체크했다. 그는 공채 1기 신입사원으로 뽑힌다. 그리고 그 뒤 7년에 가까운 세월을 포스테이터에서 보냈다.
막상 입사는 했지만 초창기 회사라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일할 맛이 났다. 어차피 회사란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보통신사업부에 지원했다. 포서브(Pos-Serv)라고 하는 일종의 PC통신 서비스 담당 부서였다.
통신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동호회를 만들고 조직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이때 각계각층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의 재산이 된다. 음악, 영화, 만화, 스포츠, 법률, 심지어 카레이서까지 웬만한 분야의 사람들은 다 만나고 다녔다.
성 사장은 이때부터 “일이란 사람이 하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각 분야에 퍼져 있는 학교 선후배, 고향 선후배, 또 그를 통해 알게 된 사람 등 모든 인맥을 동원해 사람을 조직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갔다.
4단계: 맡은 일은 일단 하고 본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불만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직장에서 상사와 불화가 생기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일에도 흥미를 잃게 된다. 성 사장도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부딪히면 일단 어떤 일이든지 상사 뜻대로 해보는 게 좋다고 권한다. 일단 해보고, 그래도 부당하다면 건의하라는 것이다.
“상사가 그 자리에 올라왔을 때는 나름대로 안목이 있는 사람일 겁니다. 일단 요구를 하면 그것이 비록 뻔히 안되는 일이라 해도 하는 데까지는 해봅니다.”
그러고 나서 구체적 결과를 들이대며 이유를 설명하면 대부분의 상사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태도가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주위에 심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런 태도는 비단 업무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 있다 보면 성격이 다른 부서로 배치되거나 예상치 않은 업무를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럴 때도 일단 도전해보는 것이 좋다고 그는 말한다.
그 역시 처음엔 포서브를 위해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을 했지만, 3년 뒤에는 마케팅을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분야이고, 좋은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부터 CEO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일해본 경험은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생각해보면 연관되지 않은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그동안 했던 일 중에서 새로운 일과 연관성을 찾아 그것을 극대화하면 좋은 토대가 되거든요.” 그는 동호회를 만든 경험과 마케팅을 연결하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그가 만난 대학생들은 PC가 가장 많이 보급된 계층이었다. 그는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e메일 빨리 보내기 경진대회를 벌이는 따위의 마케팅을 기획했다. 당연히 성과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5단계: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지켜라
하지만 그가 몸담았던 포서브팀은 우여곡절을 거쳐 실패로 돌아갔다. 서비스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회사 차원에서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부서원들은 한신정보통신이라는 새로운 곳으로 옮기게 됐다. 그때 그는 다른 곳으로 갈지언정 이름값(네임밸류)을 낮추는 곳으로는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포스데이터에 비해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곳이었죠. 포스데이터에 오래 있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스스로 네임밸류를 떨어뜨리고 싶진 않았어요.”
그는 불안했지만 포스테이터에 남는 방향을 택했다. 그즈음 한솔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이미지가 괜찮았던 한솔이 막 인터넷 사업을 시작하면서 스카우트한 것이다. 그는 영업과장으로 자연스럽게 승진하면서 한솔에 입성했다.
한솔은 그동안 경력을 쌓은 그에게 또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계열사간 회의체였던 그룹사무국에 파견돼 6개월 동안 ‘전용회선 가입자 유치를 위한 프로젝트’를 맡은 것이다.
그는 이때 그룹에 관련된 회사와 거래처 등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벌여 500여 기업을 유치했다. 그동안 해왔던 영업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주어진 임무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성 사장은 임원이 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현장경험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부서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간접경험을 쌓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6단계: 트렌드에 뒤처지지 마라
“사실 나올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제 생각엔 한솔도 모기업이 제조업인만큼 아직 제조업 마인드 중심이었어요. 정보통신 패러다임은 매우 빠르게 바뀌는데 말이죠.”
그는 한솔이 외부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런 생각은 뭔가 구실을 찾게 만들었다. 그때 헤드헌터가 찾아왔다. 물론 그는 헤드헌터가 어떻게 자신에게 연락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헤드헌터가 제안한 것은 “외국계 기업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너무나 매력적인 거였다. “한번은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한솔에 있을 때도 항상 그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그는 흔쾌히 면접을 보겠노라고 했다.
그들은 면접에서 어떻게 회사에 기여하겠느냐고 물었다. 또 얼마 동안 얼마만큼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물었다. 물론 면접에서 자신 없는 부분도 있었다. 영어를 못하는 것과 결혼을 안한 것, 그리고 운전면허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쪽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영어는 배우면 되고, 결혼은 하면 되고, 운전면허는 따면 된다는 것이었다. 대신 성 사장은 잘할 수 있는 영업만큼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는 이렇게 지금의 아이아시아웍스에 영업부 부장으로 승진해 옮겨왔다. 그리고 1년 만에 사장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아이아시아웍스가 마지막 직장이길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 장담할 수 없단다. 그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온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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