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겨울 ‘불씨’라는 책을 처음 접하였을 때 자신도 모르게 깊이 몰입 되었던 일을 기억한다. 그 후 두 차례나 읽었고 조직을 옮길 때면 직원들에게 언제나 일독을 권했던 책중의 하나가 됐다.
물론 문화인류학적 측면에서 일본을 분석한 명저(名著) ‘국화와 칼’을 먼저 읽은 뒤 ‘불씨(상하)’를 읽는다면 더욱 이해가 명쾌해질 것이다.
이 소설은 일본 봉건시대의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내용으로서 그는 일찍이 케네디 대통령이 일본인중 가장 존경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개혁은 반대자들이나 부패한 적대자들을 몰아내는 것만이 아니요, 그것은 구성원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의 경제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주인공은 말한다. 이는 조직의 성장과 발전 속에서 그 구성원들도 동일한 수준의 자아성취(self-accomplishment)를 맛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경영의 한 측면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240여년전 일본 봉건사회에서 성공적으로 개혁을 추진했던 한 통치자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1700년대 후반 약260개의 번으로 구성된 막번 체제의 에도(江戶)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일본사회는 각각의 번이 에도 막부의 지배와 간섭을 받으면서도 번주를 중심으로 자율적인 정부를 구성해 관할 번민을 통치하는 봉건 사회였다.
이 소설은 극심한 궁핍과 부채로 번의 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르고 번민은 만성적인 무기력감과 패배의식에 빠진 요네자와라는 번에 17세의 젊은 청년 요잔이 적자도 아닌 양자(養子)의 신분으로 번주가 돼 "재의 나라"에 개혁의 불씨를 지핌으로 시작된다. 그 앞에 놓인 수많은 벽, 권위, 부패, 타성, 개혁 불감증들이 요잔의 신념 앞에 하나 둘 허물어지고 작은 불씨는 거대한 용광로의 불꽃이 돼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는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요잔을 돕는 개혁의 주체 세력들과 기득권 세력간의 갈등 극복과정과 개혁 주체 세력들의 역할 그리고 작은 개혁의 불씨들이 전체 번으로 확대돼 성공에 이르기까지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동시에 개혁의 주체 세력들이 개혁이 성공하자 일부는 또다른 기득권 세력이 돼 부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소설을 현재 우리나라, 기업, 내가 속한 조직, 그리고 자기 자신과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느끼는 바가 많으리라 믿는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국내외 경제환경이 불안하고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조직내 창조적 파괴자요, 혁신의 기수라 할 수 있는 Change Ignitor들의 등장이 절실하다.
우리는 혁신과 개혁을 흔히 말한다. 동시에 조직 내에서의 그 한계를 너무도 쉽게 발견하기도 한다. 혁신의 주체요 변화관리의 리더로서 요잔의 개혁성공의 핵심요인은 무엇이었으며, 개혁과정에서의 수구파의 저항 극복 및 개혁파들의 역할과 개혁이 완성된 후 개혁파들의 또 다른 부패를 어떻게 방지하고 개혁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 바란다.
다음 글속에 요잔의 개혁정신이 요약돼 있다. ‘나의 개혁은 사랑과 신뢰 없이는 되지 않는다’, ‘번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불씨가 되어주기 바란다. 우선 자신의 가슴에 불을 붙여주기 바란다.’, ‘그리고 타인의 가슴에도 그 불을 옮겨주기 바란다.’
IMF 이후 국내 기업들은 40대 중간 간부들을 제1 퇴출 대상으로 삼았었다. 그리고 이는 수년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른바 386세대라고 해 30대 기수들이 새로운 디지털 경제 하에서 총아처럼 부상되기도 했다. 설익은 경험과 이성보다는 감성에 바탕을 두고 벤처진흥이라는 기치 아래 모두가 고삐 풀린 망아지꼴 모양 광기어린 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돈(chaos)을 즐겨왔지만, 카오스의 유희도 이제는 막을 내려가고 있는 듯 하다.
몇차례에 걸쳐 한국 기업문화에 있어 중간 간부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었다. 情과 恨의 긍정적 측면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때, 어깨춤이 절로 나는 신명의 기업문화가 창출될 수 있으며, 동시에 강력한 응집력을 갖게 되며 이는 위기극복과 제2의 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됨을 강조했었다. CEO의 가장 큰 임무중의 하나는 그와 같은 중간 간부들, 즉 개혁과 혁신의 ‘불씨(Change Ignitor)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 기업들의 경영자들은 이들을 육성.발굴하기 보다는(말로는 인재를 중시한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스스로를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로 생각해, 자신이 회사 일에 대해, 경영에 대해, 제품과 시장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오만에 빠져있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은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아무리 머리(뇌)가 중요하다고 해도 손과 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으며 뜨거운 가슴을 머리가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조직은 각 유기체가 자신의 기능과 역할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용될 때, 동시에 상호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요잔의 개혁정신과 리더십이 아무리 뛰어났을지라도 그를 보좌하는 젊은 리더들이 없었더라면 그이 개혁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잔과 그의 개혁 주체들이 이끌어가는 개혁과정을 통해 중간 간부들은 물론 CEO들도 자신들의 혁신능력과 리더십을 객관적으로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01년 9월호에는 기업현장조사에 바탕을 둔 ‘in Praise of Middle Managers’라는 보고서가 눈을 끌고 있다. 이 보고서는 미국에서도 한 때 혁신과 개혁의 장애요소(bottle-neck)로 인식됐던 중간 간부들에 대해, 정반대의 기업조사결과를 내놓고 있다.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No’할 수 밖에는 없는 이유 5가지를 생각해 보고 모두가 ‘No’라고 말할 때, ‘Yes’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 5가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직의 핵심 중간 간부들에게도 동일한 과제를 부여해서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경영의사결정을 내리셔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조영탁 휴넷 대표이사ytcho@hu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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