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규모 감축 방안에 따른 초등학교 교사 부족사태를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들로 해결하려는 정부 방침을 놓고 교육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전국의 10개 교육대학 학생들은 10월 11일부터 이에 항의하며 동맹휴업에 들어갔다. 정부의 계획이 ‘초등교원의 전문성을 무시한 처사’로 교육의 질적(質的) 저하를 가져온다는 것이 학생들의 주장이다.
기존의 초등학교 교사들도 “우리가 4년 동안 배운 것을 1년만에 하겠다는 것이냐”며 몹시 자존심이 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정부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소란'은 현 정부가 자초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교육부의 대책 없는 ‘교원대책’이, 그렇지 않아도 교실 붕괴다, 학력 파괴다 하여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교육현장을 더욱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99년 1월 교원 수급(需給)에 대한 정확한 전망도 없이 ‘고령(高齡) 교사 1명을 내보내면 젊은 교사 2명을 채용할 수 있다’는 어설픈 논리로 교원 정년(停年)을 65세에서 62세로 낮추어 교단에 ‘퇴출’의 찬바람을 불어넣었다. 동시에 ‘나이 많은 교사는 무능교사’라는 분위기를 조장해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교사들을 교단에서 떠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교직을 그만둔 숫자가 올 2월까지 초·중등 합해서 무려 4만2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50대의 남자교사는 서울시내 초등학교마다 1명 정도 남아 있을 뿐이다.
당초 정부는 정년과 명예퇴직을 합해 올해까지 2만1000명 가량이 학교를 떠날 것으로 예상했다. 행정의 무모함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교육대 졸업자가 제한되어 있으니 초등학교의 교사 부족사태는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교육부는 교단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교사들을 다시 불러들였고, 99년 5월에는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 3866명을 교과전담 교사로 임용했다. 이때도 교육대 학생들이 반발했으나 교육부는 공문까지 보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월 불쑥 등장한 것이 학급 규모를 35명으로 감축하겠다는 방안이다. 초등의 경우 35.7명인 학급당 평균 학생 수를 2003년까지 0.7명 줄어든 35명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교육대를 졸업하자마자 전원이 임용돼도 신규 교사 수는 더욱 부족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학급 규모 감축 방안'은 애초부터 문제점을 안고 출발했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일이야 원론적으로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갑자기, 전국적으로 일제히, 그것도 전학년에 걸쳐 이를 시행하겠다고 하니 그 효과에 대한 신뢰도가 반감되는 것이다.
■학급 규모 줄면 교사 수업방식도 변해야
물론 이 정책과 관련해 교실 증축으로 인한 건설경기 부양,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들의 취업 기회 확대 등 교육 외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교육적 효과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학급인원을 평균 0.7명 줄이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과연 높아지는 것일까? 교사의 자질과 수업운영 방식, 학생들의 성향 등을 감안할 때 어느 수준의 학급 규모가 우리에게 적절할까? 학급 규모를 줄이면 학업 성취 이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일까?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9년에 7개년 계획으로 '학급 규모 축소 정책'(Class-Size Reduction Program)을 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3학년의 학급 규모를 18명으로 줄이자는 프로그램이었다. 클린턴이 총 120억달러의 투자를 제안한 이 정책에 착수하면서 미 연방 교육부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여러 주(州)의 경험을 종합, 분석해 정책의 이론적 근거로 제시했다. 그중 핵심 내용은 ‘규모가 작은 학급은 저학년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촉진시켜주고, 의미있는 효과는 학급당 학생 수가 15∼20명 선으로 줄어들었을 때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학생 수를 30∼25명으로 줄여봐야 어떤 효과도 보기가 어렵고, 자격을 갖춘 교사를 확보하는 일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또한 학급 규모가 줄어들면 교사의 수업방식도 변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의 경우는 아무런 배경 설명이 없다. 정책 결정이 졸속으로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고 문제가 불거졌으니 땜질 처방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정부가 이와 같은 악순환의 습성을 과감하게 버리지 않는 한 교육계의 ‘소란’은 주제만 바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온통 학생과 세금을 내는 학부모들이 떠맡아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권문한 주간조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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