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게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 지 물어 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대답은 직장 문제다. 직장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업무스트레스, 성과에 대한 압박감은 물론, 매일같이 출근하는 그 자체가 체력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도 한다. 그러니 직장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대답은 바로 매너리즘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쳇바퀴 도는 듯 뻔한 일상에서 오는 무료함은 예상보다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떠나거나, 경험해 보지 않았던 것을 시도해 보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반경이 좁아진 탓에 일탈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요즘 TV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사람들이 꿈꾸는 일탈을 주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여행 관련 프로그램이 넘쳐났다. 출연자들은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 것처럼 모든 것을 훌훌 던져버리고 발길 닫는 곳으로 떠난다. 생각해 보라. 행선지가 어딘지 알려주지도 않고 무작정 차에 타서 공항으로 달려가면, 비행기표가 주어진다. 설레는 마음으로 행선지를 확인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흥분되지 않는가? 그렇게 바다든 사막이든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그 사람이 된 것처럼 만족스럽지 않았던가.

지금은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이제는 또 다른 자아를 찾아 일상을 탈출하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끈다. 혹시 부캐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부캐는 온라인 게임에서 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를 이르는 말이다.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원래 캐릭터가 아닌, 다른 인격과 개성을 가진 캐릭터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부캐하면 떠오르는 연예인은 바로, 유재석이다. 유재석은 유고스타, 유산슬, 라섹, 닭터유, 유르페우스, 유DJ뽕디스파뤼 등 숱한 부캐를 탄생시켰다. 가장 유명한 부캐는 사랑의 재개발로 데뷔한 트로트 가수 유산슬이 아닐까 싶다. 유재석 이외에도 김신영의 둘째이모 김다비로 활동 중인 개그우먼 김신영, 최근 유재석과 혼성 그룹을 준비하는 린다G 이효리가 대표적이다.

시청자가 부캐에 열광하는 이유는 역시 그들처럼 해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장래희망이 있었다. 물론 대답할 때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주변의 기대와 현실의 벽만큼 쪼그라들었던 장래희망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자신의 욕구보다는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왔던 지금까지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소망하지만, 하지 못하는 것을 TV에서 해주니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열광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처럼 일탈을 시도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TV 속 연예인처럼 극적인 캐릭터 변신은 아닐지라도, 퇴근 이후나 주말을 이용해 평소 가슴속에만 품어왔던 또 다른 나로 변신하는 사람들. 회사에서는 내성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저녁에는 클럽에서 DJ를 한다거나, 퇴근 후 근교로 솔캠(혼자서 캠핑을 하는 것)을 떠나거나, 유튜버가 돼 다양한 영상을 찍고 대중과 소통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연예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탈을 유튜브나 SNS를 통해 접하면서, 뒤늦게 일탈의 대열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응원받아 마땅하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 후회 없지 않겠는가. 다만, 건강한 일상 탈출과 안전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일상의 작은 변화조차 우리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꿈꾸는 일탈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잦은 변화를 요구한다면,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했던 일탈 자체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또한 큰맘 먹고 시도했던 과감한 일탈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평소 내성적인 성향으로 얌전했던 사람이 부서 회식자리에서 분위기를 주도했다고 생각해 보자. 회식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해 보니 자신이 너무 오버한 건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후회가 밀려오고 이불킥을 할 정도라면 내 일탈이 내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행동의 변화는 주변 사람들이 가지는 인식과 기대를 변화시킬 수 있다. 나중에는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괴롭힐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신뢰의 기초는 일관성인데, 어떤 사람이 이전과 달리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면 신뢰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남들이 수용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일탈이라도 주변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직장인이 퇴근 후 홀로 캠핑을 떠난다고 해 보자. 물론 내가 꿈꿔왔던 삶일지라도,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다면 가족과의 상의와 협조가 필요하다. 자신의 욕구충족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다른 사람도 이를 수용하고 협조해 줄 수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가상공간에서는 자기 감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위험한 게 또 있을까. 사회적인 이슈가 됐던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나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역시, 타인의 인격을 모독하고 심지어 잔인한 범죄를 서슴지 않았던 극단적인 일탈로 볼 수 있다. 내 일탈이 가족과 주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이는 건강한 일상 탈출이라 할 수 없다.

셋째, 현실에 보다 충실하자.

일상탈출은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전제로 해야 한다. 일상에 충실해야 일탈도 가능하고 안전하게 다시 복귀할 수 있다. 유튜브에 업로드할 영상을 찍고 편집한다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면, 다음 날 직장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그런 날들이 반복된다면, 둘 다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실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일탈이 주는 짜릿함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중독의 속성은 내성과 금단증상이다. 점점 더욱 큰 자극을 바라게 되고,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을 경우 짜증과 불안, 초조 등 다양한 정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이 결국 가장 바라는 것은 평범한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평소에 지겹게 느껴졌던 일상이 결국은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가장 튼튼한 기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우리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었다. 하늘은 매일 새로웠고,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 역시 똑같은 적이 없었다. 단지 우리가 그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의 내일은 매일 새롭고 흥미로운 일들로 가득 찬 일탈의 연속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