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노동법률] 김대영 기자 = 경기도에 있는 한 생활용품 제조업체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사직을 종용했다. 직원 A씨는 "사장이 얼마 전 모든 직원들을 모아 놓고 코로나로 회사가 어려운데 먼저 자를 수 없으니 알아서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업체 대표는 당장 간접경비를 줄이고 있지만 조만간 인건비 등 직접경비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코로나19, 항공ㆍ관광업 외 업종으로 충격 확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 항공ㆍ운수업, 관광ㆍ숙박업을 넘어 다른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민주노총이 지난 2~3월 코로나19 피해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 제조업 등 다른 업종 피해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 상담 비중을 보면 숙박 및 음식점업이 21.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제조업 19.6%, 운수 및 창고업 15.0%, 도매 및 소매업 13.1%, 교육서비스업 7.2%,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6.5% 순이었다.



국내 주요 업종도 타격을 입었다. 전경련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기준 주요 10개 업종 평균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도 같은 달보다 각각 17.5%, 19.0% 감소했다. 이 조사에는 10개 업종별 협회(대한건설협회, 한국기계산업진흥회,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한국석유화학협회,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한국체인스토어협회, 한국항공협회)가 참여했다.노사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경우 구조조정이 잇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인력 감축에 대한 우려가 높다.

코로나19 여파로 소비 둔화가 이어지고 수출이 감소하면 기업 실적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때 기업은 인건비를 줄이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 고정비용(생산량 변동과 관계없이 일정하게 지출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인건비 감축이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구조조정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30일 "항공ㆍ여행업계뿐만 아니라 조선업ㆍ중공업ㆍ정유ㆍ자동차 등 기업 규모ㆍ업종ㆍ근무연차와 관계없이 대규모 감원 등 구조조정 위기 상황이 모든 산업 영역으로 확산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 올 하반기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국노총이 지난 2월 25일부터 3월 5일까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산하조직 355개 사업장 중 코로나19로 노동조건에 영향이 있거나, 영향이 있을 예정인 곳은 57.2%(203개)로 절반을 넘었다.

경영계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경련은 앞선 조사에서 코로나19가 6개월 이상 이어지면 올해 10개 업종 고용규모가 평균 10.5% 감소할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실제 인력 감축 가능성은 기업별 현금 사정에 달려 있다. 기업이 현금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위기 대응 방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 조사를 보면 국내 주력업종(건설, 기계, 디스플레이,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전자정보통신, 조선)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경우 고용규모가 5.7% 감소할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업종 평균보다 감소폭이 4.8%포인트 더 낮게 전망된 것이다. 이는 주력업종이 다른 업종보다 상대적으로 현금사정이 나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권혁민 전경련 산업전략팀장은 구조조정 가능성이 높은 업종을 묻는 질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어려워질 업종 역시 항공과 관광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그 이후에는 자동차나 정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쪽은 상대적으로 현금 능력이 있는 업종들이기 때문에 선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대기업보다는 중소ㆍ중견기업 중심으로 인력 감축이 더 큰 폭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권 팀장은 "대기업들도 전략적으로 일자리 지키기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대기업들은 (인력 감축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 것 같다"며 "아무래도 자금력에 한계가 있는 중소ㆍ중견기업 쪽에서 (인력 감축이) 많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되면 산업 전반에 타격 불가피

문제는 코로나19가 얼마나 장기화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남재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력업종 고용감축 가능성을 묻자 "말 그대로 코로나로 인한 효과가 얼마나 크냐의 문제"라며 "지금 상태에서 고용창출이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현재 상황에서 이야기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 받는 타격은 중소기업이 클 것이고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견뎌낸다고 해도 상황이 장기화되면 대기업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참고할 수 있는 가장 최근 사례는 사스와 메르스다. 두 사례의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간에 그쳤고, 일부 업종에 피해가 집중됐다는 분석이다.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20일 "(사스 주요 발병국인 홍콩, 대만, 싱가폴의 경우) 경제 영향은 단기에 그치고 이후 급반등하면서 장기적 영향은 미미했다"며 "전체 경제에 비교적 큰 충격을 미친 경우에도 업종별로는 충격의 강도에 큰 편차가 존재하고 대체로 일부 업종(음식숙박, 서비스 등)에 피해가 집중됐다"고 했다.

다만, 사스와 메르스는 국지적으로 발병했고 지속기간이 비교적 짧았다. 코로나19는 상황이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11일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산업연구원도 "코로나19는 전 세계적 확산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수출과 제조업에도 상당한 영향이 예상되고 따라서 (사스와 메르스 사례보다는) 피해업종의 범위가 더 넓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예정처)는 코로나19 여파가 메르스 때와 유사하다고 가정하면 올해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이 –0.68%포인트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국내 경제활동 위축과 주요국의 성장둔화 정도가 3월 중 확대된 점을 감안하면 경제적 충격이 이 수준보다 크게 나타날 하방위험이 존재한다"고 내다봤다.

코로나19에 딸려 나온 경영상 해고 요건

노사는 고용감축 가능성에 대비해 각기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법률적 쟁점으로 떠오른 문제는 경영상 해고 요건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어야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인력 감축이 객관적으로 볼 때 합리성이 인정되면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동계는 이 요건을 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기술 도입이나 업무방식 변경, 업종 전환, 일시적 경영 악화, 장래의 경영위기에 대한 대처 등을 긴박한 경영상 필요로 인정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한국노총은 해고제한법을 제안했다. 경영 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 이외에는 경영상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경총은 경영합리화 조치가 필요할 경우 경영상 해고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을 보호하는 규제가 과도하면 기업이 채용을 기피해 고용이 위축되고 실업이 증가한다는 이유다.

경총은 "경영상 판단에 따른 인원삭감 등 경영합리화 조치가 필요한 경우에도 경영상 해고가 가능토록 함으로써 기업이 기술변화 대응, 조직 유연화를 통해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에는 경영상 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만 발의된 상태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12월 경영 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거나 현존하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을 때만 경영상 해고가 가능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국노총이 제시한 해고제한법과 거의 동일하다.

윤종오 전 민중당 의원도 같은 해 7월 법안을 냈다. 윤 전 의원안은 신기술 도입 또는 업무방식 변경, 업종 전환, 일시적 경영 악화, 장래의 경영위기에 대한 대처 등을 경영상 해고로 볼 수 없는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노동계가 경영상 해고 사유로 인정하면 안 된다며 언급했던 사례와 같다.



주요국들은 우리나라와 유사한 내용으로 경영상 해고 요건을 정하고 있다.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규정하고 있고, 구체적 해석은 법원이 맡는다. 프랑스는 경제적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경영상 해고가 가능하다. 신기술 도입이 필요한 경우에도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인정한다.

반면, 미국은 경영상 해고 요건에 관한 제한이 없다. 대량해고를 할 때는 근로자와 행정기관에 통지하면 된다.

의견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경영상 어려움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명문 규정으로 정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현행법이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불분명하게 규정해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명문화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시하기도 했다.

이병훈 교수는 "지금 시기에는 오히려 노사 합심이 필요한데, 경총이 이런 시기에 민원 사항(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을 해결하겠다면서 오히려 노동계로부터 불신을 자초하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태도"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 고용감축 대비해 생계대책 마련해야"

금속노조는 고용유지를 위한 방안으로 대기업 사내유보금을 정조준했다. 금속노조는 지난달 30일 "정말 자본의 주장처럼 하반기 시장 경직으로 인한 불황이 뻔한 상황이라면 유보금을 풀어서 고용을 지키고 이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선업 사례를 언급하며 인력 감축 부작용을 지적하기도 했다. 금속노조는 "조선산업 장기 불황의 과정에서 오직 해고라는 방법으로만 대응한 한국 조선산업이 정작 전환기를 맞자 숙련기술과 인력부족에 발목이 잡혔다"면서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 고용유지지원금 등이 언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까다로운 절차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봉수 강남노무법인 대표노무사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려면 사전에 기업이 고용센터에 신고하고 승인을 받고 임금을 지급한 내역도 다 보내줘야 한다"며 "절차도 쉽지 않고 까다로워서 근로자 동의를 받아 무급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한편, 코로나19 장기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이 제시되기도 한다. 대규모 고용감축에 대비해 공공일자리를 창출하고, 생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병훈 교수는 "외환위기 때처럼 공공근로나 잠시라도 재정을 풀어서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재난기본소득 같은 생계보전대책이나 실업자들의 생계대책, 공공 차원에서의 일자리 창출, 해고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대영 기자 kdy@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