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의 역할 및 사외이사의 중요성

기업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CEO보다 건설적인 이사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기업 실적에 관해 대다수가유능한 경영자를 떠올리지만, 미국 및 유럽에서는 기업 성과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이사회를 떠올린다. 더 놀라운 건, 국내 기업에 재직 중인 임직원 중 상당수가 이사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사외이사는 어떻게 선임되는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사회는 무엇인지 그리고 사외이사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어떤 중요성을 갖고 있는지 그 함의를 먼저 살펴보자.
 
대한민국 상법 제393조에 의하면 이사회는 법령이나 정관에 의해 주주총회 권한으로 되어 있는 사항을 제외하고 회사의 모든 업무 관련 의사결정 권한과 이사의 직무 집행을 감독할 권한을 갖는다. 좀 더 쉽게 말하면, 회사의 중대한 안건 및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 참여하면서 CEO를 포함한 경영진이 기업 성장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도록 적절히 견제와 균형을 수행하는 것이 이사회의 역할이다. 특히, 회사 경영진에 속하지 않는 사외이사는 대주주의 경영 및 전횡을 적극적으로 감시, 관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회사의 해산 및 합병, 중장기 경영계획 입안, 재무제표 및 영업 보고 승인, 주식 발행 및 출자 승인, CEO 선임 및 경영진 평가와 보상 등 기업의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은 경영자 혼자 임의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의 동의와 검토 아래 진행돼야 한다. 그러므로 글로벌 기업의 혁신 성과에는 항상 유능한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부각된다. 반면, 국내 기업의 성과 및 실적과 관련해 이사회의 역할이 조명되거나 평가된 경우는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문 것이 사실이다.
 
거수기 역할에 불과한 국내 사외이사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외이사 임기 제한을 강행하면서 현재 사외이사 임기 제한과 관련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재계에서는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강력히 제기했다. 참고로, 상장사의 사외이사 임기에 대해 획일적으로 정부가 연임을 금지하는 건 외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기업 경영과 관련해 오래 재직한 사외이사는 내부 상황을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데,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면 그 자체로 사외이사 제도의 비효율성만 초래한다는 것이 재계의 입장이다.
 
다수의 기업이 사외이사제도 개선에 관해 반발하는 이유는 지난 1월 14일 상장사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법제처와 차관회의 심사를 마치고 대통령 재가 절차가 끝나면 2월 초부터 공포돼 곧바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시행령 이후, 한 상장사에서 6년 간 사외이사로 재직했거나 계열사 포함 9년간 근무한 사외이사는 더 이상 같은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을 수 없다. 이 경우 올해 사외이사를 반드시 교체해야 하는 상장사는 566곳으로 무려 718명의 사외이사를 새롭게 선임해야 한다.
 
재계 입장과 달리 정부가 사외이사 임기를 강력하게 제한한 이유는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 제도에 관해 시민단체 및 학계로부터 개선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가 CEO의 의사결정에 반론이나 반대를 표명하지 않고 찬성만 하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의 2019년 조사 결과, 이사회 안건의 99.64%가 원안대로 통과됐다. 더욱이 대규모 내부거래 관련 안건은 100% 원안대로 가결되는 진기록까지 수립했다.
 
사외이사가 거수기에 머문 이유는 국내 기업들이 이사회의 역할 강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한다. 1997년 IMF가 발생하기 전까지 국내 기업의 이사회는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았다. 1996년 정몽구 현대 회장이 사외이사제 도입을 강조했을 때 재계에서 논란이 됐을 정도로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 제도는 역사도 짧고 이사회의 전문성 역시 부족했다. 대주주나 CEO가 추천한 사람이 사외이사로 그대로 선임됐기에 해당 기업의 경영진과 끈끈한 인맥으로 사외이사가 결정된다는 얘기는 재계 관행처럼 여겨졌다.
 
그 결과, 이사회에서 경영진의 주장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한 사외이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반대표를 행사한 사외이사가 해당 기업에서 다시 연임되기는 불가능했다. 이에 비해 글로벌 기업의 이사회 멤버 중 80% 이상의 사외이사는 경영자 출신으로 구성돼 해당 기업의 경영자와 다른 목소리를 건설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 그러나 법관 또는 고위공직자, 대학교수로 구성된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는 업계와 기업에 대한 전문성 및 경험이 부족해 이사회의 거수기 역할만 가속시켰다.
 
기업의 성장을 위한 사외이사의 개선 방향

미국의 경우 사외이사는 경쟁사의 사외이사를 겸할 수는 없지만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는 조치를 두진 않는다. 즉, 특정 회사에서 장기간 사외이사로 근무할 수 있는 권한을 미국은 보장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의 레빈슨 이사회 의장은 무려 20년 넘게 사외이사 역할을 해오고 있다. 재계가 상장사의 사외이사 임기 6년 제한이 지나친 규제이자 기업 경영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미국의 사외이사 제도가 임기를 제한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장기간 임기를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및 유럽 기업의 이사회가 거수기가 아닌 능동적인 이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로벌 기업의 사외이사는 평균적으로 연 7회 이사회에 참석하고, 이사회 업무를 위해 연평균 100시간 넘게 자신의 노력을 투입하며, 기업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때로는 견제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의 경우 이사회는 분기별로 1회 개최되고 분기별 개최되는 이사회 역시 1시간에 그쳐 경영자의 의사결정을 심도 있게 검토 및 판단하는 것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하다.
 
이사회가 기업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될 경우 경영자의 의사결정을 자주 방해할 수 있고 외국계 자본의 영향력을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한계도 존재하기에 무조건적인 독립성이 건전한 사외이사 제도의 개선 방향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경영자에게 제대로 된 조언과 통찰력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거수기 역할에 불과한 현재의 사외이사 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단순히 6년 임기 제한을 넘어서 국내 사외이사 제도가 개혁, 개선되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해당 업(業)을 명확히 이해하고 업계의 흐름을 통찰할 수 있는 전문성을 지닌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사외이사는 경영자의 의사결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넘어 중장기 전략 수립 및 미래 리더십에 필요한 조언을 통해 기업 성장에 기여해야 한다. 국내 상장사 사외이사 상당수는 업종과 무관한 분야의 교수, 법조인, 고위공직자 등으로 구성돼 경영자의 리더십 함양 및 경영계획 수립에 관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부족한 사외이사는 이사회의 허수아비에 그칠 뿐이다.
 
둘째, 중장기 전략 및 장기성과에 대한 CEO 평가에 사외이사의 적극적인 견제 및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글로벌 기업인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사외이사가 CEO의 장기성과에 대한 비전, 구성원 존중을 기반으로 한 조직문화 등을 토대로 경영진을 견제 또는 지지하는 반면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는 기업의 단기성과 평가에만 머물러 있다. 기업이 중장기 전략과 CEO 승계 계획 등을 체계적으로 준비, 수립하고 있는지 사외이사가 제대로 심사, 목소리를 내야 국내 기업의 혁신 및 성과도 올바르게 실현될 수 있다.
 
셋째, 사외이사가 이사회 업무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요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한다고 해서 투명한 이사회 운영, 사외이사의 독립된 목소리 등이 구현되기는 어렵다. 분기별 1회, 1시간에 불과한 이사회 진행은 경영자의 리더십과 기업 경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사외이사 활동에 대한 세부 내용을 주주총회에 보고하고, 사외이사가 기업 경영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평가해야 기업 성장에 기여하는 사외이사 제도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