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최근 기업의 ESG경영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며 경영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면 ESG 경영이란 무엇이고 이것을 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일까? 그 답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 Rock) CEO인 래리 핑크가 2018년 1월 자신들이 투자하고 있는 회사의 CEO들에게 보낸 서한(letter)에서 찾을 수 있다.
 
서한에서 블랙록은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의 주주중심주의 지배구조를 단호히 거부하고 이해관계자 중심 지배구조를 추구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주주가 지금까지 주주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해 왔다는 주주중심주의를 거부하고 이것과 오랜 시간 동안 대립해온 이해당사자 중심의 지배구조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블랙록뿐만이 아니다. 2019년 8월에는 미국 200대 대기업 최고경영자로 구성된 협의체(Business Roundtable) 소속 181명의 CEO가 회사는 소비자, 근로자, 하청업자, 지역사회,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인들의 이익을 위해 운영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가장 주주의 이익을 옹호해야 할 것 같은 대규모의 기관투자자와 대기업들이 주주자본주의를 포기하고 이해당사자주의를 추구하겠다고 하니 가히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바꿔 놓았을까? 바로 주주 이외의 다양한 회사 이해관계인자들의 이익을 고려하는 ESG경영을 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장기적 주주가치와 회사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켜 지속가능 한 경영이 가능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특히 자신이 투자한 기업들에게 ESG경영을 요구하고 있는 블랙록이 2021년에 가장 중요한 ESG경영분야로 꼽은 것이 인권 경영(Human Rights Risk Management)과 직장에서의 다양성·평등성·포용성(diversity·equity·inclusion: DEI)을 중요시 하는 인적 자본 관리(Human Capital management)인 것을 보면 ESG경영에서 근로자는 매우 중요한 회사의 이해관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ESG경영은 근로자의 인권과 인적 자본을 다루는 노동 법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준수에서부터 출발돼야 할 것이다.
 

2. ESG와 인권 경영 평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ESG경영분야에서 근로자의 인권 보호와 관련된 인권 경영이 ESG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부상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직장에서의 다양성·평등성·포용성을 중요시 하는 인적 자본 관리도 ESG 경영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간의 IT 기술의 발전, 최근의 코로나19의 확산을 비롯한 근로 환경의 변화로 인해 재택 근무 등 다양한 형태의 근무가 활용되면서 근로조건이 급변하고 정신적?육체적 소진(burnout)이나 직장 내외에서의 각종 괴롭힘(harassment) 등 근로자의 건강에 대한 위협이 증가함에 따라 근로자의 보호가 더욱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글로벌 투자자들 역시 투자대상 회사에 대해 근로자 보호를 한층 강조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블랙록에 이어 세계 2위 자산운용사인 뱅가드(Vanguard)도 직장에서의 다양성·평등성·포용성(DEI)을 올해 가장 중요한 주주 활동 대상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인적자본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회사에 대한 불매운동, 브랜드 손상, 근로자의 잦은 이직, 소송제기 등으로 회사의 장기적 성장과 주주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므로 투자대상 회사의 이사회에 인적 자본을 관리?감독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공시하도록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인권 경영과 인적 자본 관리 측면에서 과연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어떤 평가에 대비해야 할지 준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ESG 경영의 완성을 위한 대비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사회(S)에 대한 준비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강조된다. 첫째는 환경(E)이나 지배구조(G) 측면과 마찬가지로 S에 대해 적절한 대응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이다. 2011년 UN 인권이행지침이나 2018년 OECD의 기업 책임경영을 위한 실사 지침을 살펴보면, 인권 경영의 완성을 위해 인권 영향 평가, 인권 정책 구축, 인권 관련 실사 및 고충처리절차 시행, 그리고 공시 단계가 강조되고 있고, 더불어 인권 관련 이해관계자들과의 실질적인 소통, 투명성 확보, 공급망 전반에 걸친 인권 실현, 구조적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간 파트너십 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인권 경영 실현을 위한 시스템 구축인 것이다.
 
한편, S에 대한 준비 관점에서 강조되는 두번째 요소는 평가 요소에 대한 충분한 이해이다. 인권 경영 시스템 구축은 ESG 관점에서 하드웨어를 갖추는 과정으로 이해된다면, 평가 요소에 대한 이해는 하드웨어가 작동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준비하는 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마치 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시험 범위 및 평가 방법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ESG 평가에 대비하는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한 준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우리나라 인권위원회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을 위한 인권 경영 가이드라인 및 간소화된 인권 실사를 진행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도입했다. 여기에는 인권 경영 체계 구축(즉, 시스템 구축), 고용상의 비차별, 결사 및 단체교섭의 자유 보장, 강제 노동 금지, 아동 노동 금지, 산업안전 보장, 책임 있는 공급망 관리, 현지주민의 인권, 환경권, 소비자 인권 보호에 관해 실체적 의무와 절차적 조치를 포함돼 있다. 또한, 2019년 법무부가 발표한 인권 경영 표준지침 초안을 살펴보면 인권위원회의 체크리스트에서 강조하는 10가지 영역에 직장 내 괴롭힘이 추가돼 총 11가지 영역에서 인권 경영의 평가가 시행됨을 알 수 있다. 즉, 위에서 언급한 11가지 영역에서 모든 기업들은 ESG 관점에서 평가를 받는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ESG 이슈 중 S는 E 또는 G와는 달리 개념을 정의하기 쉽지 않고 S요소가 어떻게 회사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객관화된 데이터가 상대적으로 적다. 뿐만 아니라 인권존중 선언,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 정책 마련, 글로벌 기준 준수 등 다양하지만 구체적이지 못한 평가기준이 활용되고 있어 인권위원회나 법무부에서 제시한 체크리스트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적절한 대비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각종 평가 요소에 대해 구체적인 평가 사례를 분석하고 대비하는 것이 S 측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권 경영 평가에 구체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매년 주요 글로벌 기업의 인권 경영에 대한 평가 결과를 공개하는 기업 인권 벤치마크(Corporate Human Rights Benchmark; CHRB)의 평가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CHRB는 인권 경영에 참조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기 위해 투자자와 시민단체가 협업을 통해 평가 결과는 공개하는 협업 단체라고 할 수 있다. CHRB는 인권 경영의 달성을 위해 기업들이 UN 인권이행지침이나 OECD의 기업 책임경영을 위한 실사 지침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는지 평가한다. 크게 여섯 가지 측면에서 평가가 진행되는데 그 중 처음 세 가지는 인권 경영을 위한 시스템을 평가하는 요소이다. 여기에는 인권 경영을 위한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설치됐는지, 인권 경영과 관련된 각종 문제를 파악하고 그 영향을 평가해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는지, 그리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 있는지 등 시스템 구축을 평가하는 항목들이 포함된다.
 

3. ESG와 노동법 준수
 
한편, CHRB의 평가 항목 중 노동 및 HR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업의 인권 존중과 관련된 구체적인 관행을 평가하는 네번째 항목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영역의 노동 관행에 대한 평가 항목이 포함된다. 적정 수준의 임금 지급, 인권 경영을 감안한 구매정책 수립, 아동노동 및 강제노동 금지, 결사 및 단체교섭의 자유 보장, 근로자의 건강 및 안전 보장, 여성의 권리 보장, 근로시간 준수 등이 그 예이다. 뿐만 아니라 공급망 내 협력업체의 노동 관행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평가 항목의 상당수는 우리나라 노동법에서 이미 규율 되고 있는 항목들이다. 예를 들어,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제12조 제1항을 근로관계에서 구체화 시킨 근로기준법 제7조에 의하면 사용자는 폭행, 협박, 감금, 그 밖에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 또한, 헌법 제32조 제5항 에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과 근로기준법 제5장에서 연소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된 부분은 아동노동 금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뿐만 아니라 헌법 제33조에서 보장된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구체적으로 보호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살펴보면 기업은 법에서 정한 바 및 국제규범과 관행에 따라 근로자의 노동 3권을 보호해야 한다.
 
CHRB에서 제시하는 노동 관행 관련 평가 항목뿐만 아니라 인권위원회 및 법무부에서 제시하는 항목도 이미 노동법에서 규율하는 영역에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상 성별,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차별을 두지 못하고, 남녀고용평등법상 성별을 이유로 채용시 차별을 하는 것도 금지된다. 파견근로자나 기간제 근로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동종?유사 업무를 하는 정규직 근로자와 근로조건에 있어 차별을 두는 것도 금지되고 있으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상 장애인에 대한 모집·채용,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 교육·훈련, 배치·전보·승진 및 퇴직·해고에 있어 차별을 두는 것이 금지되는 등 다수의 법령이 노동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인권위원회와 법무부에서 제시하는 고용상 비차별 항목 역시 우리나라 노동관계법령에 의해 이미 규율 되고 있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ESG 인권 경영 관련 평가 항목의 대부분이 이미 현행 노동관계법령에서 규율 되고 있기 때문에 ESG 평가 관점에서 노동법 준수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됐다.
 

4. 나가며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 이로 인해 ESG 측면에서 근로자의 인권 존중이 경영 판단의 과정에 이미 편입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권 경영 관련 평가 기준에는 모호한 측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가 항목은 노동법에서 이미 규율 되고 있다. 따라서 그 어느때보다 노동법 준수가 기업의 경영에 중요한 요소가 됐다.
 
한편, CHRB의 평가 항목을 살펴보면 기업은 자신의 사업장 내부뿐만 아니라 공급망 전체에 참여하는 다수의 협력업체의 인권 경영 및 HR 이슈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사업장 내부의 노동법 준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업이 운영되는 공급망 전체의 노동법 준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ESG 평가라는 관점에서 종합해 보면,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효율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이를 통해 기업 자신뿐만 아니라 공급망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의 노동법 준수 여부를 평가하는 포괄적인 컴플라이언스 체크(compliance check)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