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2001년 정보기술(IT) 산업 버블 붕괴 이후 경쟁사들이 긴축경영에 돌입한 것과 달리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리는 등 공격적 경영을 했다. 이후 잘 알려진 애플의 눈부신 성공의 상당 부분은 이때 확보한 인재 덕분이었다. 그는 전략 못지 않게 인재를 위기 극복의 원동력으로 본 것이다. 체질개선 노력은 기업의 불황 내성(耐性)에 따라 다르다.기업이 느끼는 위기의 수준과 유형에 따라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그래야 조직에 알맞은 처방전이 될 수 있다. (1)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자 불황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은 기업들은 불황을 인적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활용하여 삼을 필요가 있다. 경쟁사와의 역량 격차를 더 벌리고 호황기에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해 놓는 것이다. 위기 때 움츠리기보다 인재를 적극 영입하는 기업의 인사관리 핵심포인트는 ▶인재 확보▶인재 단속▶핵심 역량 교육▶조직 확대에 대비 등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인재확보와 관련해 채용 때 신중한 검증이 필요하다. 검증된 경력사원을 택할지, 아니면 잠재력 있는 신입사원 확보에 초점을 맞출지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제약회사 아이시스(Isis Pharmaceticals)는 평소 생명공학 업계의 우수 과학자에 관심을 두고 상시 인재 모니터링을 한다. 불황기가 오면 즉각 채용팀을 가동한다. 신입사원 채용은 불황기라는 거친 시기를 인력 육성의 호기로 삼는 효과가 있다. 미 자동차 보험회사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Insurance)는 경기 침체기에 오히려 캠퍼스 채용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취업 열망이 강한 졸업생들을 선별해 훈련시킴으로써 열정과 능력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인재 유치에 비해 인재 유지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기 쉽다.인사담당부서는 불황기라고 ‘다른 데 갈만한 데도 없을 텐데…' 하고 안이하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된 한 국내 한 프로야구 선수의 이적 사건은 이를 잘 보여준다. 불황기 인재 유지를 잘하는 업체는 일본 게임소프트웨어 회사 닌텐도다. 50세가 넘은 베테랑 연구원들이 미국 기업들의 스카우트 공세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 돈 몇푼 더 받는 것보다 오랜 인생 동료와 함께 하는 걸 중시하는 '프렌드십 경영'의 결과다. 유명업체들은 남다른 강점과 차별화된 경쟁력 있었기에 일류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일본 캐논의 성공사례 역시 핵심역량 중심의 내실 경영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1995년 캐논의 사장으로 부임한 미라타이 후지오는 이익이 나지 않는 PC·광카드·FLC ·디스플레이 사업을 접었다. 부서가 없어져 갈 곳이 없는 이들은 재교육시켰다. 새로운 기술과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특허를 양산하고 캐논을 기술기업으로 거듭나게 했다. 글로벌 HR컨설팅업체 왓슨와이어트의 ‘인적자원지수 보고서’를 보면 불경기 때 교육 예산을 삭감한 기업의 성과는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5배 정도 낮게 나타났다. 실제로 2000년대 초 IT 버불 붕괴 때 교육비를 줄인 미국 기업들의 3년간 주주수익률이 10% 정도인데 비해 교육비를 줄이지 않은 기업은 54%에 달했다. 마지막으로 불황기 활발해지는 인수·합병(M&A)이나 분사에 대비해 기업문화 융합을 위한 대비를 해놔야 한다 글로벌 인적자원(HR)컨설팅 회사 타워스페린이 500만 달러 이상의 M&A 사례를 연구한 결과 약 83%가 수익창출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원인은 문화적 갈등, 핵심 인력의 유출, 생산성 감소, 의사결정의 지체, 관리 방식의 충돌 등 대부분 사람 관련 이슈였다. (2)체질 개선이 핵심이다 기원전 265~201년 60년 넘게 지속된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포에니 전쟁은 극적 반전으로 유명하다. 지중해 최대 무역강국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었다. 포에니 전쟁의 이 명장면은 기업의 조직운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니발은 당시 기병 9000명 등 6만여 병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는 1600km의 대장정을 강행했다.그야말로 죽음의 행진이었다.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북부에 이를 때 군대의 수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만6000명이었다. 대부분 얼어 죽거나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수백 마리였던 코끼리도 40여 마리로 줄고 그나마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다. 로마 정복은 커녕 생사의 기로에 처했다. 한니발은 이런 위기를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코끼리를 과감히 포기하고 주변의 부족들을 점령하면서 군대를 기병 중심으로 바꿔나갔다. 불황으로 사업확대는 커녕 현상유지도 어려운 기업이라면 뼈를 깎는 체질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내던 일이라도 벼랑끝에서는 시도할 용기가 생긴다. 인력의 재배치 같은 조직 구조조정이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 금나라 관리였으나 칭기즈칸의 포로가 된 뒤 명재상으로 발탁돼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설계한 야율 초재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 해로운 일을 없애느니만 못하다. 또 한 가지 일을 만드는 것은 한 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하다.” . 미국 캘리포니아의 몬트로즈 트래블(Montrose Travel)이라는 여행사는 조직 구조조정의 대표적 성공사례이다. 1990년대 초 불황기에 수익성 없는 거래를 과감하게 끊고 영업 역량이 있는 인력을 발굴해 판매 부서에 재배치했다. 지원 인력을 확 줄이고 판매와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도록 평가·보상 제도를 뜯어고쳤다. 미국의 위기극복 모범 중소업체에 주는 ‘블루칩 엔터프라이즈’라는 상까지 받았다. 소수의 핵심인재보다 다수의 범용 인재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위기 때 기업 체질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은 “꼼꼼히 분석해 왜 안 되는지를 합리적으로 증명하려는 일류보다 일단 하겠다고 말하는 3류가 낫다” 고 말한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중시하는 인재 철학이 3평짜리 시골 창고에서 시작해 30년 만에 140개 계열사, 직원 13만명, 매출 8조원의 대기업을 일군 비결의 하나였던 것이다.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선두를 달리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경쟁력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23년째 팀을 이끄는 명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팀 운영 철학은 ‘팀보다 큰 선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헌신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을 높이 평가한다. 한두 명의 스타플레이어보다 팀워크를 중시하는 감독 아래서 평범한 선수들조차 팀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이다. (3)비상 수단은 신중에 신중을 카르타고의 한니발에 의해 초토화된 로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다. 이 때 로마가 보여준 대응은 기업 경영에도 적용할 교훈을 준다. 로마 원로원은 한니발과의 전투에서 대패한 젊은 장수 스키피오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줘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또한 귀족과 로마 시민에게 세금을 두 배로 물리고 전과자·이민족 등 소외계층이 로마군에 입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불황 타개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도 생존 자체가 어려운 기업도 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이면 비상 수단을 강구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막다른 길에 몰리더라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원칙을 수립하고 이를 구성원들에게 솔직하게 전달해야 한다. 1996년 미국 AT&T에서 분사한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2000년대 초 통신업계 불황으로 사업매각·아웃소싱 같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10만 여명이던 직원을 6만여 명까지 줄였다. 이런 쓰라린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CEO 헨리 스캇은 구성원들과의 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외환위기 때 노루페인트는 감원을 하면서 '위기가 가시면 우선적인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이 약속을 제대로 지켜 많은 기업의 귀감이 됐다. ‘30%를 줄인다’는 식의 숫자놀음식 비상대책은 가급적 피하자는 의견이 많다. 국내 한 경제연구소 설문 조사를 보면 국내 기업 CEO들은 구조조정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종업원의 사기저하를 꼽았다. 동료들을 떠나 보내고 남은 구성원들은 사기와 열정이 저하되는 ‘생존자 증후군(Survivor Syndrome)’을 겪는다고 한다.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감성관리'에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LG 경제연구원 강진구 책임연구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