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기가 걸린 소장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도중 송상현 소장이 한국 인재들의 ICC 등 국제기구 진출 노력을

촉구하면서 미래는 밝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



(헤이그=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 "국제형사재판소(ICC) 119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분담금이 9번 째로 많다. 하지만 직원 1천 명 가운데 한국인은 컴퓨터 분야에 단 한 명 뿐이다."

아시아인 최초의 국제사법기구 수장인 송상현(70) ICC 소장은 1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법의 지배가 국제적 규범이 될 것이라며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당장의 돈벌이보다는 장래를 내다 보고 국제기구에 더욱 적극적으로 진출할 것을 촉구했다.

송 소장은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이 ICC 재판정에 서는 것이 국제적 정의와 공정한 재판 진행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사형제가 없고 수감자 인권보호가 잘 돼 있다는 점에서도 본인에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3월 3년 간의 소장 임기를 마치는 송 소장은 재선에 나설 것이냐는 질문에 "집사람이 건강도 염려하고 개인적으로는 격무라 그만두고 싶다"면서도 "그러나 ICC를 위해서 할 일이 많고 한국인 최초의 국제사법기구 수장으로서 소명감도 느낀다"며 재선 도전을 고민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다음은 송 소장과의 일문일답 주요 내용이다.

▲ICC가 설립된 지 햇수로 10년이다.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 ICC는 국제 인권 수호의 보루다. 전쟁과 침략, 집단학살, 반인륜적 범죄 등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ICC가 개입한다. ICC 소추엔 공소시효가 없다. 사후 처벌로 정의를 세울 뿐만 아니라 각국 권력자에게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범죄적 행위를 예방하는 역할도 해왔다.

▲ICC가 약소국 독재자만 처벌하고 강대국에는 약하다는 비판도 있다.


= ICC는 유엔 산하 기구가 아니며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은 협약 비준국이 아니다. 이들을 영입하는 것이 숙제이긴 하지만 오히려 강대국 입김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편할 때가 많다. 미국은 정치ㆍ군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적 전통과 관련 인프라도 강력해 ICC에 들어올 경우 의도적이든 아니든 지배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카다피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 등에 대해 ICC가 재판 관할권 행사하나?

= 반(反) 인륜 범죄 혐의로 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지만 1차적으로 리비아 정부가 신병을 넘겨 주지 않으면 ICC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국제적 사법정의를 세우고 신뢰성 있고 객관적인 법정에서 공정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ICC 처벌엔 사형은 없고 최대 종신형 뿐이고 수감자 인권 보호와 시설이 아주 잘 돼 있다. 알 이슬람 본인에게도 ICC 법정에 서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내년 3월11일로 3년 소장 임기가 끝난다. 재선에 나서나?

= 소장의 업무는 격무의 연속이다. 직원이 1천 명이 되는데다 핵심인 재판관들 모두 자신이 최고의 법조인이라는 자존심이 강하고 생각과 행동이 다양해 하루도 맘이 안 놓인다. 아내는 내 나이와 건강을 염려해 만류하고 나도 개인적으론 그만 하고 싶다. 다만 ICC에 아직 할 일이 많고 한국인 최초의 국제사법기구 수장으로서 소명감도 느낀다.

소장 재선에 나서지 않아도 재판관으로서의 임기는 3년 더 남게 된다. 그러면 모두 12년을 이곳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 이후엔 전에도 일했던 하버드법대에서 교수로 오라는 등 여러 말들은 있으나 일단은 좀 쉬고 싶고 일정 기간 후엔 후학들을 위해 봉사할 수도 있겠다.

▲한국인이 ICC 등에 더 진출할 가능성은 없는가?

= ICC 회원국은 119개지만 재판관은 소장을 포함해 18명 뿐이다. 추첨을 통해 임기가 3, 6, 9년으로 정해지는 재판관은 한 나라에 한 명 밖에 있을 수 없다. 내 재임 기간엔 한국인 재판관이 선임될 수는 없다. 그러나 ICC 내엔 재판관 말고도 법률가들이 일할 자리가 많고 직원 1천명의 조직이어서 인사, 재무, 전산 등 여러 분야의 좋은 일자리들이 있고 웹사이트에 늘 채용공고가 난다. 119개 회원국 중 한국의 분담금이 9번째로 많지만 한국인 직원은 한 명 뿐이어서 매우 아쉽다.

▲한국인 지원자 없었거나 문턱이 높은가?

= 과거에 외교부, 검찰, 법조에서 지원자 있었으나 모두 안됐다. 낙방 이유를 정밀분석해 열심히 보완해서 재도전하는 정신이 부족한 듯하다. 또 언어와 자기분야 전문지식 뿐아니라 ICC의 연원과 역할 등에 관한 공부 등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또 처음부터 재판연구관이라는 좋은 자리만 노릴 게 아니다. 젊은 사람들은 인턴, 법조 경력자들은 '전문가 방문근무제'등을 이용해 6개월-1년 분위기도 익히고 경험을 쌓고 결심해 지원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국제법, 특히 형사법은 법조인들에게 인기가 없는 듯하다.

= 군사독재 시절 형사법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하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쓰라린 과거 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국제형사법 분야는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으나 아직 전문 학자나 실무자가 매우 부족하다. 또 ICC의 경우 불과 만 9년 밖에 안돼 앞으로 조직이 커지고 중요해질 것이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법의 지배가 국제적 규범이 될 것이다. 젊은 법조인들이 로펌 등에서 당장의 돈벌이만 할 생각을 말고 멀리 내다 보고 이 분야에 진출하면 인권과 약자 보호의 보람도 느끼고 직업적으로도 무궁무진한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국제기구 수장 사무실치고는 작고 검소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실에서 집무 중인 송상현 ICC소장.

choib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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