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샘플

현대위아 자기소개서
직무 : 연구개발

1.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아르바이트나 교내외 활동은 무엇이었습니까?

‘캡틴 맥’ 우연히 발견한 리더십 인재의 가능성
세계적인 ceo 스티브 잡스는 ‘오늘 하루 특별한 생각을 해냈다면 성공한 하루’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항상 기억하며 성공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대학시절 내내 열정적으로 자작자동차 대회에 꾸준히 참여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부족했던 것이 출전 횟수가 늘고, 고학년이 되면서 스펜션 파트장부터 프레임 파트장까지 거칠 수 있었고, 차량의 모든 기술 구조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3학년 때는 팀을 운영·총괄하는 팀장을 맡아 개인적인 발전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팀원들을 이끌어 총 6가지 이벤트 중 3부분에서 최고 성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팀원들은 저의 노력을 알아주며 ‘캡틴 맥’이라는 애칭을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6개월 동안 팀을 이끌며 리더십 인재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은 어쩌면 우승보다 더 큰 것을 얻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2. 살아오면서 부딪혔던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었습니까?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정직과 공정이다
대학 신입생 시절 여러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수행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장기간 이루어진 프로젝트인 만큼 점수의 비중이 높았고 팀원들의 협력이 중요했습니다. 저는 팀장을 맡게 되었고 부담감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중간발표 시간에 한 팀원이 발표를 하여 점수를 높게 받았는데 그것이 과거 선배의 자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높은 점수도 중요하지만 정직이 결여된 것은 진짜 점수가 아니란 생각에 팀원과 이야기를 한 후 교수님을 찾아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수님은 신입생의 양심을 인정해주시며 대체 과제로 한 번 더 기회를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단합하여 밤샘 끝에 다른 조들과 비슷한 점수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팀워크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팀원의 정직한 자세이며, 리더는 흔들림 없이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여 결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3. 학창시절 선 후배/동료들과 생각의 차이로 갈등을 겪었던 경험에 대하여 기술하십시오.

‘먼저 모범을 보이며 갈등을 풀어나가다’
졸업과 제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많은 동기는 물론, 선후배들과의 갈등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공동의 일보다 개인적인 업무가 더 중요했던 학생들의 단합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학회 대표가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 또한 개인적인 연구 과제를 마쳐야 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리더 역할을 했을 때를 떠올리며 학회 대표의 힘든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기분 상하지 않도록 대표와 의견을 조율하여 중간입장의 뜻을 밝혔습니다. 문제를 발생시킨 동기들과 후배들을 불러 ‘조금 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젊음으로 하나가 되자’는 말로 설득했습니다. 제가 먼저 이해한다는 뜻을 밝히자 조금씩 마음을 움직여주었고, 바로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학회 대표와 더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는 모범을 보이자 어느 순간부터 모두 동료애를 발휘하며 성공적으로 전시회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은 누구나 겪지만 그것을 이겨낸다면 더 넓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생활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작은 실타래부터 풀어나가는 넓은 마인드를 갖겠습니다.

4. 본인의 이익과 본인이 속한 조직의 이익간에 상충되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내가 아닌 조직과 팀원들의 입장에서’
저는 단체생활에 강합니다.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사람들이나 조직의 상황을 먼저 파악해 유연하게 대처해나갑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팀의 일원으로 조화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군 입대를 대신해 발전기 엔진의 부품인 블레이드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산업체 근무를 하였습니다. 저의 일은 부품을 제작하고 검사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여러 가지의 공정을 숙달하여 금세 숙련자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선임들에게 인정은 받았지만 점차 많아지는 업무량과 잦은 야근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시간을 마련해 업무 외에 자기개발을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입장으로 바꿔 생각해보니 저를 필요로 해주는 것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더욱 더 믿음직한 직원이 되어 마지막까지 성실이 근무를 수행해낼 수 있었습니다.

5. 본인이 타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아로새긴 ‘기차 속 48시’
미국에서 열리는 자작자동차 경주 세계대회에 출전하면서 미리 계획했던 배낭여행을 함께 실천에 옮겼습니다.
동부 여행을 마치고 시애틀로 가는 횡단열차에서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구경하고 있다가 문득,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런 여행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른 이어폰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용기를 내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먼저 다가가 웃으며 인사를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배낭여행을 하는 일본인, 락밴드의 기타리스트, 하이디 옷을 입은 꼬마 등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기차 속에서의 48시간을 소중히 채웠습니다.
처음에 주춤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 번 용기를 내니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건 너무나 반갑고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습니다. 언제든 어떠한 문화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저는 훗날 현대위아의 진정한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거라 자신합니다.

6. 입사지원을 하게 된 동기 또는 포부를 간략히 기재하십시오.

“달려라! 소닉 세이버!” 현대위아와 함께 신나는 질주
13살, 잊은 기억이 더 많은 나이지만 아직도 제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은 ‘우리는 챔피언’이라는 만화영화입니다. 주인공이 미니카로 경주를 하는 것을 보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희열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저도 해보고 싶어 모아두었던 세뱃돈으로 모터, 베어링, 윤활유 등 부품과 관련 물품을 구매했습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동네에가 가장 빠른 ‘소닉’을 완성했고, 한 백화점에서 열리는 대회에까지 참가했습니다. 1등은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자동차 분야에 대한 꿈을 확신했고 열정을 가지고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이제는 그 열정을 ‘202020’의 목표를 향하고 있는 현대위아에서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가장 좋은 설계는 단순한 연구개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이루어질 생산과 보급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는 세심함으로 현대위아를 대표하는 엔지니어가 되어 현대위아와 멋진 질주를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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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립일
    1976년 03월 29일
  • 기업규모
    대기업 (사원수 3,150명)
  • 업종
    기계·조선·자동차·운송장비
  • 복리후생
    주5일근무, 연차, 월차, 보건휴가, 경조휴가, 창립일휴무, 반차, 육아휴직, 국민연금, 의...
    • 주5일근무, 연차, 월차, 보건휴가, 경조휴가, 창립일휴무, 반차, 육아휴직
    • 국민연금, 의료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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