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미, 년썸 년썸.” 지난해 9월 이선미(24·여)씨는 한국을 찾은 베트남 인형극단을 수행하며 통역을 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쑨미”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년썸(nhan sam·인삼)’을 사고 싶다고 했다. 예정대로라면 오후 6시에 끝나는 통역 아르바이트. 하지만 이씨는 이날 ‘일일 가이드’로 나섰다. 서울 남대문시장을 돌며 단원들의 인삼 쇼핑을 도왔다. 집에 돌아간 시간은 자정 무렵. 같은 해 11월, 통역할 때 만났던 한 단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국에 다시 왔는데 함께해 줄 수 있느냐”고 했다. 이씨는 선뜻 그를 도우러 나섰다. 한국어라고는 “안녕하세요”밖에 할 줄 모르는 그와 경복궁·남산 등을 돌며 한국을 소개했다. 여행을 마치고 베트남으로 돌아간 그는 고맙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
글로벌 역량이 핵심
이씨는 당시 한국외대 베트남어학과 4학년이었다. 취업 준비에 바쁠 무렵이지만 그는 지난해 6월 이미 포스코의 신입사원으로 합격한 상태였다.
“특이한 제 전공에 애착이 강했어요. 베트남어를 배울 수 있는 자리라면 빼놓지 않고 도전합니다. 외국인과 어울리는 것도 유달리 좋아하고요. 베트남 어학 연수를 다녀왔고 입사도 확정됐지만 그런 이유로 열심히 돌아다닌 것 같습니다.”
이씨는 영어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2007년 1월부터 6개월 동안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는 “현지 영어를 배우려고 갔는데 강사의 발음이 너무 또박또박하더라”며 “‘실전 영어’를 배워야겠다 싶어 한 커피숍에 무작장 찾아가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소개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점차 귀가 뜨였다고 한다. 이씨는 “영어·베트남어를 열심히 배운 게 포스코 입사 성공 요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제대로 봤다. 포스코가 수많은 신입사원 가운데 그를 ‘대표 사원’으로 꼽은 건 글로벌 역량 때문이다. 포스코 인사 담당 이연종 과장은 “세계인·창조인·실행인이 우리 회사 인재상”이라며 “그중에서도 이씨의 ‘세계인’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인도·베트남 등지에 진출해 있다. 2011년부터는 인도네시아에 제철소도 짓는다. 이씨를 채용한 것도 회사의 해외 진출 움직임과 떼 놓을 수 없다. 이 과장은 “베트남어 전공자를 별도 채용하는 등 특수어 전공자를 우대한다”며 “이씨도 4학년 1학기 때 특별 채용된 경우”라고 말했다.
베트남어 전공자라고 해서 입사가 쉬운 것은 아니다. 지난해 상반기에 베트남어 특기자로 채용된 이는 이씨가 유일하다. 전공자 중에서도 그가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씨는 학점(4.23점)이 높다. 조기 졸업 때까지 7학기 동안 성적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다. 그는 “포스코 입사 전형이 진행되던 4학년 1학기 때 4.5 만점을 받았다”며 “전공도 특이한데 학점마저 안 좋으면 취업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기본에 충실한 면모도 갖췄다. 학생의 기본은 학업이라고 여긴다. 그는 “학업은 뒷전인 채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취업 준비생을 보면 ‘부족한 학점을 인턴 경험으로 만회하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며 “학업과 인턴 경력을 둘 다 잘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다른 경험이 부족해도 학점이 좋으면 회사에서 인정해 줄 거라고 기대했다. 이 과장은 “우수한 학업 성적은 채용 시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기본 중시하는 포스코
입사 후 이씨는 열연마케팅실 선재판매그룹에 배치받아 일한다. 볼트·너트 제작에 쓰이는 철선(鐵線) 소재를 국내 업체에 판매하는 업무다. 당장은 베트남어를 쓸 일이 없다. 팀 선배는 이씨에게 “모든 일의 기본은 내수 판매”라며 “여기서부터 차곡차곡 배운 다음 해외 수출 업무를 해 보라”고 조언했다. 포스코는 크고 무거운 쇳덩이를 다루는 회사다. 이 과장은 “작은 실수가 큰 실패로 되돌아올 수 있다”며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입사 후 연수 때부터 회사의 이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고 전했다. “동기들과 6주 동안 연수를 받았는데 소위 ‘튀는’ 경력을 가진 사람이 없고 모범생이 많았어요. 그런데 영어 프레젠테이션이나 장기자랑을 할 때는 어찌나 똑 부러지던지….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업무를 처리할 때도 ‘기본·원칙에 충실하라’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클릭 한 번 잘못하면 회사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한다. 최근 이 회사가 강조하는 기본 원칙은 ‘서비스 정신’이다. 중소기업에 컨설팅을 해 주러 대구에 내려갔는데 그곳 사장은 ‘포스코에서 직접 이런 데까지 찾아와 서비스하느냐’며 놀랐다고 한다. 이씨는 “회사에서 교육받은 대로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장기적으로 베트남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베트남어 전공자 특채를 통해 입사한 만큼 기회를 살려 의무를 다하겠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