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리드 슐테(ASTRID SCHULTE)’. 키 24.8m에 몸무게 약 5만t으로 울산에서 태어났다. 주로 태평양에서 지낸다. 컨테이너선인 이 배는 현대중공업 신입사원 최원석(26)씨의 첫 작품이다. 그가 직접 배를 설계하고 만든 건 아니다. 올 1월 입사한 그는 6주 연수를 마치고 3월부터 조선사업본부 계약운영1부에서 일한다. 해외영업 담당 부서에서 수주 계약을 체결해 오면 그때부터 일이 시작된다. 계약서에는 배를 어떻게 건조하고, 돈은 언제 받고, 어떻게 넘겨줄 지가 상세히 적혀 있다. 이에 따라 일을 순조롭게 진행하는 게 그의 업무다. 2006년 6월 수주한 아스트리드는 3년 만인 올 6월 선주에게 넘겨졌다. “부서에 배치 받은 뒤 처음 본 아스트리드의 모습은 철판 더미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올 5월엔 배가 거의 완성돼 명명식(배 이름을 짓는 행사)을 했습니다. 독일에서 건너온 선주가 선실에 올라 첫 경적을 울린 순간,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최씨는 “배를 넘겨줄 때 왜 자식을 떠나보내는 심정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고 말했다.
#뱃고동 소리 들으며 키운 꿈
최씨의 자기소개서엔 특별한 컨셉트가 있다. ‘부산사나이’다. “고등학교에선 바다가 보였습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면 심심찮게 뱃고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죠. 저는 그 소리를 들으며 꿈을 키웠습니다.” 입사 서류에도 비슷한 내용을 담았다. ‘그때 들었던 뱃고동 소리 참 멋있었다. 이제는 부산 사나이답게 그 배를 내가 만들고 싶다’.
면접장에서도 최씨는 그런 면모를 내보이려 애썼다. 면접관으로 나선 한 임원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며 “부모님 밑에서 근면·정직을 배운 진짜 남자다”라고 말했다. 담백한 답변이었다. 최헌 인사팀장은 “최종 면접에서는 인성을 평가한다”며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 최종 면접은 취업 준비생 사이에 ‘선문답(禪問答)’ 형태로 알려져 있다. 최씨의 경우에는 임원이 직접 “우리 회사를 어떻게 발전시킬 건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최씨는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 동력을 발굴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질문이 이어졌다. “자네 말대로라면 이 회사 저 회사 다 인수하자는 말인가.” 최씨는 “건설·정유사 등 중공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만한 기업을 인수해야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팀장은 “인성 면접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소신을 드러내는 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꼽는다.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남긴 책이다. 그는 “예전부터 정 명예회장을 존경했다”며 “책에서 배운 도전 정신을 입사 과정에서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정 명예회장은 회사의 ‘아버지’나 다름없다”며 “그의 창업 정신이 면면히 전해 내려오는 회사가 현대중공업”이라고 소개했다.
최씨가 지닌 자질은 회사의 특성과 잘 어울렸다. 현대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도크 없이 맨땅에서 배를 만드는 ‘육상건조공법’을 개발했다. 2004년 6월 현대중공업은 배는 바다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상식을 깼다. ‘꼭 도크에서 만들어야 하나. 땅에서는 안 될까’하는 의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 공법을 사용하면 제작 기간·비용을 줄일 수 있다. 최씨는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게 회사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대중공업의 특성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로 과묵합니다. 잘나간다고 떠들어대지 않고 어렵다고 쉽사리 죽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스케일이 남다릅니다. 수천억원짜리 선박까지 다루니까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길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되는 길이다’는 정 명예회장의 창업 정신이 살아있습니다.”
#기본에 충실하고 글로벌 역량 갖춰야
현대중공업은 수출로 먹고사는 회사다. 따라서 글로벌 역량을 강조한다. 최 팀장은 “회사가 중국에 활발하게 진출하면서 더욱 강조하고 있는 역량”이라고 설명했다. 최원석씨가 ‘대표 신입사원’으로 선발된 것도 글로벌 역량을 높이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남가주대 교환학생과 헝가리의 삼성 계열사에서 인턴을 한 경험이 있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영어 실력이 부족해 전공(경영학) 수업을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최씨는 수업 내용을 일일이 녹음했다. 기숙사로 돌아와 다시 듣고 받아썼다. 그래도 못 알아들을 때는 룸메이트에게 받아 써 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몇 달을 하다보니 영어 실력이 눈에 띄게 나아졌다. 해외 경험은 회사 생활에 도움이 됐다. 그는 “계약 관련 업무를 맡기 때문에 고객 대부분이 외국인”이라며 “해외 체류 경험이 없었다면 고객과 e-메일을 주고받고 통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기술을 중시하는 만큼 기본에 충실하다. 1978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첫 출전한 이래 현재까지 금메달 수상자 42명을 포함해 국내 최다인 80명의 입상자를 배출했다. 쇠를 자르고 붙이는 게 배 만드는 기본 과정이라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안전을 어느 기업보다 중시한다. 최 팀장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플러스 알파’를 가진 최원석씨는 대표 신입사원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