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아유?
사실 저의 기본 무늬는 말 그대로 '범생이'입니다. 의사로서도
굉장히 박사까지 마칠 정도로 공부를 많이 했고 지금도 난이도가 높은 환자를 진료하고 있어요. 초중고 시절, 정말 책만 잡고 살던
아이였어요. 운동에는 관심도 없었죠. 하도 집에만 있어서 어머니가 동네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데려와 함께 놀라고 했어요. 심지어
부모님께서 동네 서점 주인들에게 미리 돈을 주셔서 저는 서점에서 죽치고 책을 읽고 살았어요.하하. 그러다 보니 세계적인 모든
책을 다 읽었죠. 그러면서 학교 공부도 따라가다 보니, 공부 외에는 다른 것 을 할 시간이 없었어요.
의
사로서 일반 회사원들과는 다른 고충도 있을 것 같아요.
의
사로서, 전문가로서 인체를 다루기 때문에 실수는 용납이 안돼요. 그만큼 공부하는 기간도 긴 건 당연한 거죠. 처음에는 성격상
의사라는 직업이 안 맞아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책을 많이 읽어서 감성이 풍부한 편인데, 의사 일은 굉장히 경쟁을 부추기는 일인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는 휴학도 많이 생각했죠. 아웃사이더 같은..? 레지던트까지도 힘들었어요. 군대 조직 같았죠. 행여
환자에게 실수가 있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의사들만의 강력한 시스템이 있어요. 배우는 입장에서는 무조건 참아야 하는 거죠.
2시간 자고 일주일을 버티는 건 기본일 정도예요.(웃음)
무
슨 이유로 의사를 계속 하는 건지? (농담 반)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이유는 환자를 돌보는 것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예요. 어릴 적부터 아프고 힘든 사람을
돌보고 낫게 하는 의사라는 직업이 아주 끌렸죠.

어
떤 순간 ‘의사하길 잘했다’ 보람을 느끼나요?
미
숙아 중에서도 초 미숙아, 호흡이 안되고, 쇼크에 빠지는 위중한 환자들을 돌봐요. 아기들 중에는 인공호흡기 3개월 달고 있는
아기도 있고요. 심지어 백일, 돌잔치도 병원에서 하는 경우도 있어요. 아이의 부모들은 아기보다 더 아파해요. 아이들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퇴원해서 부모님과 집에 갈 때는 저도 같이 울어요. 물론 아이가 잘못 되도 같이 울죠..저나 레지던트 분들도 함께
울어요.
아이들이 퇴원해서 집으로 가는 걸 볼 때의 행복, 그 아이들이 1~2년 후에 걸을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부모님이
울면서 찾아오는 그 순간의 행복이 몇 년 묵은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주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인생을 100년이라고 봤을 때, 신생아에게 우리가 전문적인 의료행위를 함으로써 그 아이가 100년을 제대로 살 수
있게 되었구나 할 때 보람을 느끼는 거죠.
진
료 뿐 아니라 병원에서 다양한 업무를 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의
사 진료, 홍보 실장등의 병원 경영, 의료 학회 등등… 현재 총 5가지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주변의 사람들의 삶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치료법의 예를 들면, 의료의 최 전선에서 환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국회의원에게 이런게 필요하다고 어필을 하는 거죠. 실제로 신생아 중환자 진료비 정부가
부담하게 하는 등의 정책이 실현되었습니다.